어떤 의자

from 25mm 2020/11/27 17:17


아파트 단지 앞의 인도,
의자 하나가 차도를 향해 놓여 있다.
앉아서 뭘 볼만 것도 없는 자리인 걸로 보아
버려진 의자인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곁에,
사진에는 밑둥만 보이지만
건널목 표지판이 서 있다.
횡단보도가 없는 곳인데 말이다.
의자와 표지판이 전혀 엉뚱한 곳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종종, 나 자신이 엉뚱한 곳에
놓여진 기분을 느끼곤 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라는
자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자조나 감상에
가까웠을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대체로 우연에 의해 결정되며
불평등이나 비극도
대부분 우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씁쓸함이
깊이 스민 마음의 상태.
라디오 헤드는 이렇게 노래했다.
'I don't belong here.'
하지만 노래를 아무리 불러도
잘못 놓인 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

아직도 가끔
엉뚱한 곳에 놓인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사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세상은 얼마나 생뚱 맞고 낯선 곳인가?
아무튼 이 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엉뚱한 곳에
발을 디딜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연이라는 것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팍팍한 삶 속에,
원하진 않지만 떠날 수도 없는
답답한 하루하루 속에.

그런데 이 엉뚱한,
잘못 놓인 듯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한 걸까?


*

아무튼
걸어가자.


















2020/11/27 17:17 2020/11/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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