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새벽의 흙집

from 이야기 2022/07/15 00:00

어릴 적 어느 성탄절에 새벽송을 따라갔다. 가파르고 꼬불거리는 길을 올라서자 성탄의 등롱(燈籠)을 내건 집이 있었다. 돌담 안에 흙으로 만든 집이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노래가 끝나자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우리들을 불러들여 식혜를 나눠주셨다. 조금 검은 빛이 났지만 따뜻하고 달콤했다.

오랜 후에 망고레(A. B. Mangore)의 '크리스마스의 시골(Villacico de Navidad)'라는 소품을 들었다. 남미의 산골에 사는 원주민들이 성탄의 새벽에 촛불을 들고 성당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이 곡을 들으며 어릴 적  새벽송을 갔던 비탈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가복음의 목자들처럼 가난한 이들이 살던 어둑한 비탈길.

일제 강점기에 학병으로 끌려 갔던 이가 쓴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징집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와 치바 사이에 있는 포병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 한국에서 온 할머니가 채소를 기르며 홀로 사셨다고 한다. 지금의 이나게역(稻毛驛) 부근일 것이다. 그 분은  어떻게 고향을 떠나서 거기서 혼자 살게 되었을까?. 현해탄을 건넌 여공들 중 한 분이셨던 걸까, 아니면 가족과 함께 일본에 있다가 홀로 되셨던 걸까? 그리고 일본의 패전의 삶은 어땠을까?

고향을 떠나 작은 빛처럼 스러져가는 삶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둑해진다. 내 아버지는 고향에서 이천 리 떨어진 곳에서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오래 살고 있다. 사실은 이런 조건 속에 이 문명의 운명이 있을 것이다. 실낙원의 신화로 수많은 삶을 지배한 긴 역사. 소중한 존재들을 끝없이 헤어지게 만드는 역사.
고향을 잃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결국 우리 모두에게 또한 각각에게 타향일 뿐인 곳이 되지 않을까? 그런 곳은  아직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 바로 지옥이다.

사진 속의 집은 내가 어릴적 성탄절 새벽에 방문했던 집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비슷하다. 종이 박스나 판자로 세웠다가 돌을 쌓고 또 흙으로 틈을 메우고 나중엔 시멘트를 바른 집. 거기 살던 이들은 모두 떠나고 고달픈 타향에서의 긴 삶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2022/07/15 00:00 202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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