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from 이야기 2003/09/18 00:00


화폭이 크면 얼마나 클 수 있을까요?

전 직장이 있던 빌딩의 한쪽 벽면에는
분홍과 울긋불긋한 색칠해진
커다란 캔버스가 걸려있었습니다.
볼썽 사나운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명화라고 하는 것들은
적당히 떨어져 한눈에 볼 수 있는
크기의 것들입니다.
그 화폭 속에
온전한 우주를 담고 있습니다.


더 많이, 더 크게...
우리는 늘 우리를 가두려 하는
제한을 넘어서고픈 욕망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그런 욕망에 충실하면
삶은 고갈되고 소진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없고
과거나 미래에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욕망은
죽음을 회피하면서
삶 또한 거부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본질에 이르는 길은
욕망의 길과는 정반대로
스스로의 한계, 제한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소멸할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
지금 이 시간의 의미도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늘리려하고
나의 삶에 무언가를 덧붙이려하고
나에게 무언가를 끌어오려는 욕망을 버리고
나를 둘러싼 제한과 한계를 인정할 때.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의 한 클로즈업


시조는 짧습니다.
그것도 아주 한정적인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조가
조선초기의 강건한 세계상을
드러내주기도 합니다.

영화는 다양한 이미지의 총체를 보여주지만
좋은 영화일 수록
그 다양한 이미지를 절제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소네트는 14줄짜리이지만
거기에 사랑의 본질이 들어가 있습니다.

짧은 시의 구절
한정된 캔버스의 공간
절제된 영상과 소리.
한정된 음표들...

우리의 조건이 제한된 것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유는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초월은 그러한 한계 내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경계를 벗어버리는 것은 도피일 뿐입니다.

진흙탕 속에서 초월하기.
그 속에서 자유하기.
그 속에서 노래하기.





happiness is a warm gun / beatles

2003/09/18 00:00 200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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