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그랬겠지만
저 또한 많이 업혀서 자랐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사촌누나...
그리고 기억에 없지만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저를 업어주셨겠지요.

누구의 등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업혀 있다가 눈을 떴던 기억이 둘 있습니다.

첫째,
어린시절 성탄절입니다.
밤을 새워 새벽송을 도는 길에
저도 가겠다고 우득부득 우겨서
따라갔었던 것 같습니다.
잠이 많은 꼬마여서 당연히 졸렸겠지요.
그래서 누군가,
아마도 그때 중고등학교 형이었을 겁니다.
저를 업고 그 새벽길을 돌았습니다.
비탈길과 산길을 두루다니는 길이어서
나를 업은 형은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저는 잠시 눈을 떴고
고개를 들었더니,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성탄의 별이었습니다.

그 새벽의 노래도 방문한 집들도
기억나지 않지 않는데
그 흔들리는 별빛이 기억납니다.

둘째,
어쩌면 그 이전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은 옷을 만드는 공장이었고
시골에서 올라온 누나들이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근처의 초등학교의 야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거길 따라가겠다고 우겼던 것 같습니다.
어떤 누나가 저를 업고 밤길을 걸어
학교까지 같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잠시 눈을 뜨자,
어둠이 가득 내려 앉은 넓은 학교에
교실 하나에만 불이 들어온 것이
보였습니다.

그후 저는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도 복도도 선생님도
아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깜깜한 교정의 불켜진 교실 하나.
그것이 기억납니다.



             
그 불빛들이 떠오르면서
살아나는 것은
그때의 따뜻한 등입니다.

어른도 아니고
저보다 겨우 몇 살 정도 나이가 더 든,
소년, 소녀일 뿐인 이들의 등이었습니다.
철부지에 칭얼이었을 저를 기껍게 업어주었던...
그 등에서 저는 따뜻하게 잠을 잤고,
어쩌면 힘이들어 저를 다시 들처 업던 동작에
저는 눈을 잠시 떠서
평생 보기 힘든 아름다운 불빛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등을 내어주고,
아름다운 불빛을 보여준 이들,
그 얼굴도, 그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들를 안고 싶어하고
따뜻함을 나누고 싶어하는 것을 배운 것은
어쩌면, 그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따뜻한 등 때문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나와
선원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다른 공장으로 옮겨가거나 식모살이를 했을,
내게 태초의 빛과도 같은
별빛과 불빛을 보여주신 분들,
참으로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in dreams / roy obison

2004/03/09 00:00 2004/03/09 00:00

Trackback Address >> http://lowangle.net/blog/trackback/126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