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이야기

from 이야기 2004/05/12 00:00

시골에서 자라신 어머니.
자신의 것을 주장하지 못하시고
남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건 떼어 주어야 하는,
어떻게 보면 어리숙하기도 하고 그저 착하기만 한,
요즘 세상의 눈으로 보면
대책이 없는 분이십니다.

조금 넉넉한 형편에서 살아오셨다면
미덕이 될 수 있었던 그런 성격을 지니신 분이
가난과 세상의 혹독함에 부딪히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1980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친천들은 큰 걱정들을 하셨지요.
순해빠진 어머니가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 다섯을 무슨 수로 키우겠냐고.

갑자기 가장이 사라진 집안,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
집은 빚으로 넘어가고 막막한 상황...

도무지 살아갈 궁리가 안보였던지
친척들은 아이들을 하나씩 맡자는 둥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했지만,
어머니는 결국 아이 다섯 모두를 끌어안으셨고
목숨을 걸고 키워내셨습니다.

*

성경에 어떤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허기가 져서
어떤 집에 들어가 끼니를 청합니다.
아들과 둘이 살고 있던 가난한 과부는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먹고는
아들과 굶어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의 청에 과부는
마지막 재료로 빵을 만들어 그에게 줍니다.
그 후로 그 과부의 기름병과 가루통엔
그만큼의 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습니다.

성경에 여러 기적들,
예를 들어 모세의 기적같은 큰 기적들이 나오지만,
저에겐 오히려 이 이야기가 전하는 작은 기적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어차피 도와줄것이면
기름과 가루가 팍팍 나오게 해주거나
돈벼락을 맞게 해줄 것이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먹고 살만큼의 최소한의 것을 줌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한
자유까지 선물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이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

자라오면서 그 기적을 생각할 때마다
그 가난한 과부의 기적이
저의 집의 기적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가장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형제중 누구도
단 한번, 굶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비어버리는 쌀독에
기적처럼 아이들 먹일만큼의 쌀이 생겨났습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꾸어오시고
벌어오신 것이지만,
어머니는 마지막일 될지도 모르는 밥을 퍼면서
눈물로 기도를 드렸을 것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그 만큼의 것들은
생겨났던 것입니다.



                                           *two fishes, 2004.5.12-브라크의 "검은 물고기"를 흉내 냈는데 이상합니다.

*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좁아지고 좁아져서 더 이상의
구석도 남아있지 않을 때,
참으로 놀라웁게도
그 기적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비록 가난하고 남보다 가진 것 없지만
나는, 또한 동생들은
그 기적의 음식을 먹고 자라왔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넉넉한 밥상이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한끼한끼가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요즘, 저의 형편도 쉽지 않고
동생들도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 다시 채워지던
그 쌀독에서 나온 기적의 밥을 먹은 힘으로
오늘도 형제들은 걸어갑니다.
그 기적의 밥을 먹은 힘으로
다시 일어납니다.








miracle song / neil sedaka
2004/05/12 00:00 200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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