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안쪽

from 이야기 2004/09/13 00:00

두어달 쯤 된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얼굴과 이름을 알만한
어떤 변호사의 이야기가 TV에 나왔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입으로 증언된
그 변호사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그는 동생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없이 가난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열심히 공부해서
S대를 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는 그렇게 노력했고
자기의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자세와 노력이 사회적인 귀감이
될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다행이라 치고,
가난한데도 공부건 무엇이건을 통해
어떤 목표를 이룰만한 능력이 없는 이들의 삶은
도무지 무엇이란 말인가?"

방송이야 원래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것도 선정적으로
포장하는 것을 일상적인 일로 삼고 있습니다.
저렇게 어려운데
저렇게 노력해서
이렇게 훌륭하게 되었다.
이 사람을 보라.

그것을 보며 노력을 결심하는 이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보며 나와는 상관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씁쓸히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편의 사람들이 많을까요?
단연코 후자가 많을 테지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자랍니다.
개천에서 나와 용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개천에서 더 나쁜 시궁창으로 가는 이도 있고
개천에서 결코 못벗어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긍정적으로 스스로를 깨치는
그 변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믿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자기의 한계 내에 묶여 있는 이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조건 없이 사람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사람을 보라,라고 하며
각고와 고투를 딛고 성취한 이들에 대한
주목을 부르짖는 곳은 많지만
조용히 자기의 그늘 안에서
가만히 살아가는 이들을 들여다 보는
그런 시선은 참으로 드문 것 같습니다.
구조적인 무시를 전사회적으로
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티프스를 앓은 후 폐인처럼 되어버린 사촌형,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술집에서 일하던 초등학교 동창,
하루 몇백원을 벌기 위해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노인,
내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수 많은 사람들...
엄연히, 엄연히 존재하는.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가난은 이야깃거리로 전락해버렸고,
인생은 선정적인 쇼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땅을 지배하려 드는 오만한 이미지의 통로들을 보며
조그만 카메라를 하나 든 나는
참으로 슬픕니다.
참으로 슬픕니다.







p.s.
사진은 두 해전 제가 근무하던 회사의 창으로 찍은 것입니다.
어느 빌딩의 입구에서 다리를 쉬던 걸인이
그 빌딩의 수위에게 쫓겨나며 무어라 대거리를 하는 장면입니다.
2004/09/13 00:00 2004/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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