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이

from 이야기 2004/11/22 00:00

초등학교 3학년의 점심시간.
지하교실의 어둠 속에
한 아이가 앉아있습니다.

교실의 저편 구석에 앉아있어 멀기도 하지만
교실의 어둠속에 스며들어 버린 것 같아
아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한참을 점심을 먹던 선생님이
어둠을 향해 이름을 부릅니다.
성일아.

아이는 어둠 속에서 나와
함께 앉아 밥을 나눠 먹습니다.
저의 짝이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까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교실의 어둠 속에서
혼자 가만히 앉아
점심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

가난한 짝이었습니다.
코를 흘리기도 하고
무궁화 뚜껑이 날아간 양철 단추를 하고 있기도 했지요.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짝이면서도 제 의식에 잘 들어오지 않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한번은 짝이
"니네 아버지 김일성이지?"라고 엉뚱한 말을 해서
화가 난 나는 선생님에 이야길 했고
짝은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지요.

*

그후로 얼마후,
짝은 신장염으로 죽었습니다.
1.2학년 때의 학급에도
신장염을 앓는 애들이 있었는데
다들 수술을 해서 나았지요.
그런데, 가난하고 바빴을 짝의 부모는
아이의 아픈 것을 제 때 챙기지 못했을 것이고
짝 또한 아프다 어떻다,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하교실에서
어둠처럼 앉아있을 때
이미 병이 짝을 이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짝이 죽었을 때,
학급의 친구들과 선생님이랑
집을 찾아갔었습니다.
비탈길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이었고,
집앞에 마당이랄 수도 없는 좁은 곳에
학급친구들과 선생님이 서 있었지요.

그런데 기억 속의 저는 거기서 빠져나와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으로,
언덕에 아이들이 서 있고
그보다 낮게 슬레이트 지붕이 걸린
그런 그림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집에 다가서지 못할 것 같은
어떤 죄의식 같은 것 때문에
제 기억은 그 현장에서 저를 빼버린 것 같습니다.
내가 선생님께 일러바쳐 꾸지람을 듣게 한 것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보살핌 없이 죽어버린 그 죽음 앞에
살아있는 내가 다가 선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죄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2004.11.22  보고싶은 성일이


두 해 정도가 지나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가
죽은 짝의 동생을 보았습니다.
삐죽 키가 커버린 동생은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핏기 없이 키만 자라버린 짝의 동생이
무거운 신문 꾸러미들 옆에 끼고
골목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사는 비탈길에서,
나 아프니 병원 데려달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어법도 배우지 못하고
그냥 시들어 죽어버린,
아픈지 어떤 건지 돌볼 여유도 없는 가족들 속에서
그냥 그렇게 가버린,
학교에선 이름도 눈길도 얻은 바 없는 친구.
아이러브 스쿨이니 다모임이니 하며 모이곤 하겠지만
정작 이름도 기억되지 않을,
미안하다, 사랑한다,라고 말하려해도
말할 수 없는...
카메라로 찍을 수도 없는...

그 어둠 속의 웅크림과
무기력하게 웃는 얼굴,
그리고 아이들 키보다 낮아 보였던
슬레이트 지붕을 떠올리면
지금도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고 맙니다.






poor boy/ supertramp

 
2004/11/22 00:00 2004/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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