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철이 형

from 이야기 2005/03/03 00:00

둘째 고모에겐 아들이 셋 있습니다.
첫째 형은 거의 환갑이 다되어가는 분이시고
둘째 형도 쉰은 넘은 나이일 것입니다.
두 분다 잘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세째, 즉 막내형이 조금 문제입니다.

어릴 때 가장 똑똑하였다고 하는 막내형은
장티부스를 앓은 뒤 머리가 나빠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기억은
분명히 가지고 있어서
늘 공부하고 더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 저에게 하모니커를 가르쳐 주었고
영어 필기체의 종류들을 구분해서
설명해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한 형의 설명은
며칠이 지나면 또 반복되는 것이었고
말 사이 사이에 멈칫거림들,
불확실한 기억의 저 깊은 우물 속에서
힘겹게 길어올리는 것 같은
멈칫거림들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발명한 언어를
처음으로 발화(發話) 해나가는 사이사이,
끼어드는 심연같은...

초등학교 이후로는 형이랑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뜻과 사람들의 뜻을 조정하는,
그런 기초적인 사회성이 부족한 형은
참 힘겨운 시간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군복무를 하고
공장을 다녔을까.

*

제 머릿속에 형이 공부하던 사전이
각인이 되어있습니다.
비록 더 똑똑해지지 못했지만
공부하는 자세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 형은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영어 사전과 국어 사전을 샀고
그것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며 밑줄을 치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형의 공부에는 진전이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다시 형의 사전을 보았을 때
앞부분, 약 5분의 1 정도의 페이지 겉면에
손때가 묻어 있었고
나머지는 하얀색이었습니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을
읽고 쓰며 공부하던 형은
금방 읽은 단어를 이내 잊어버렸을 것이고
그래서 돌아보던 과정 중에
글자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사전의 종이의 단면들이 이룬 옆면.
새카만 손때가 뭍은 부분과
훨씬 더 넓었던 하얀 면의 선명한 컨트라스트.
어떤 금지의 선보다 더 선연하던.
결코 넘어갈 수 없었던
흰면의 세상.


*

그 후로는 형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가족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형은 신발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했고
접착제로 신발 밑창 붙이는 일을
십수년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산의 신발 공장이 다 망하던 무렵,
회사에서 쫓겨났고
안먹고 안씀으로 모아두었던 얼마간의 돈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혼자 사는 형의 집은 폐품 수집장을
방불케 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남들이 버린 물건들을
집안에 끌어 모아놓은 집에서
형은 혼자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발을 한지 몇년이 되었는지
봉두난발의 머리를 감지도 않아서
미친사람 같은 행색이라고 합니다.




                               -종철형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것을 나는 가만히 보기만 하였다 2005.3.2


재작년에 부산엘 갔다가
형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흔히 아리랑 고개라고 부르던 곳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자신의 다리를 끌고 가듯
천천히 고개를 넘던 머리 긴 사람을 보았을 때,
아, 형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형이 완만한 고개에 올라
내리막으로 내려가는 한참 동안을 그냥 가만히.

아주 긴 롱테이크였고
그 때 내 마음 속에서 오갔던 것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물끄러미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
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뒷모습 너머의
바다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

얼마 전에 문득
형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능하다면, 형을 방문하고
형이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친지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총명했던 기억만 있고
결코 똑똑하지 못한,
오히려 일반인 보다 못하지만
군대에도 끌려갔었고
혼자 먹고 살기 위해서
오랜 직장 생활도
해야했던 그 삶에 가해진
세상의 무자비함이란
과연 어떠했던 것인지...
군대에선 아마도 조롱과 구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관한
생활을 했을 것이고
공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선뜻 만나기 힘든
형을 향한 마음을 열고
그 얼굴과 하루하루를
내 어릴 때의 선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누군가를,
그 삶을 찍는 다는 일에서
그 대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굴을 대하고서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삶을 찍고
그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기록하는 일에
아직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란 걸
스스로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2005.3.3
2005/03/03 00:00 200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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