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높은 곳

from 이야기 2005/04/19 00:00

어릴 때 어머니는
성경구절을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이라고 하는
좀 우스운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의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악한 일만 일삼는 주변의 강대국에 의해
신이 선택한 자신의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을 때,
그는 왜냐고 신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왜 저 악한 자들이
우리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는 겁니까?'

그러나 그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지 못합니다.
신은 엉뚱한 답을 합니다.
'물이 바다를 가득 채운 것 같이
진리가 온 세상에 가득할 날이
올 것이다.'

이 무슨 답답한 답변인지...

그러나 결국 그는
자기 자신, 자기나라라고 하는
울타리를 넘습니다.

결국 지금 내나라의 불행,
나의 불행을 넘어선
더 큰 것이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고
기뻐하며 저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못마땅했습니다.
어쩌면 어린날
어머니로부터 말씀을 들었을 때의
거부감이 온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가난과 궁색함을
합리화하려는 인용.
혹은 현실의 문제들로부터
시선을 빼앗기 위한 시도.
다분히 그런 맥락에서
통용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년 전 성경을 읽다가
교인들과 교회가 생략을 하고
잘 읽지 않는 구절이
바로 아래에 이어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위의 구절 다음에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이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높은 곳.

종국적인 정의에 대한 믿음과
그런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재의 괴로움.
그 현재의 괴로움이
오히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세상'의 높은 곳이 아닙니다.
'나'의 높은 곳이었습니다.

내 지금이 험난하고
내 지금이 비루할지언정
종국적인 진리를 믿는다면
나는 이미 그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해오던 일과는 다른
엉뚱한 작업을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것들에 부대끼고
시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달림을
뒤집어 생각하면
나의 높은 곳에 있는 기쁨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색해지고
대외적으로 잊혀져가고 있겠지만,
그런 사회적인 규정들을 넘어
높은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보기에 화려하지도 않고
멋있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하찮고 이름없고
아직은 의미부여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걸음들이지만
궁극의 진리와 만난다는 믿음이 있다면
이미 그 걸음은 승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는
그런 걸쳐있음을 견디기,
사랑하기,
나아가기.







2005.4.19
2005/04/19 00:00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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