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미지 1

from 이야기 2005/08/18 00:00

아직도 구석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하기 전에
몸을 기괴하게 치장합니다.
얼굴에 색칠을 하고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무서운 표정으로 창과 방패를 듭니다.
당연히, 적들에게
위협을 하기 위한 분장입니다.


얼마 전 역사책을 읽다가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이 기괴한 분장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진군했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조선군과 백성들을 위협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더 나아가 일본군들은,
남원성 전투에서
그 지역 사람들이 경외하는
근처 절의 사천왕상을 끌고 다니다가
불 태우는 짓을 합니다.
조선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위엄있는 존재를 훼파하면서
자신들의 강함을 과장하고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

수년 전, 이런 광고가 있었습니다.
"역사는 일등만을 기억합니다"

광고를 업으로 삼고 있던 저였지만
그 광고를 보는 순간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역사는 일등만을 기억합니다,라는
말 이면에 숨겨진 무서운 위협이
읽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등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일등인 우리에게 붙지 않는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다.

광고 심의란 것이 있는데
괜한 외래어나 과장 광고를 단속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깔보는
그런 광고를 제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광고는 큰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최고 강자라는 꾸밈을 통해
상대방을 지배하려 드는
그러한 이미지 조작이
원시사회도 아니고, 조선시대도 아니고
내가 살아있는 지금 여기에서
멀쩡하게 자행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
저는 참담했습니다.

이땅이 천국이 아닌 한,
이미지를 통하여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윤리성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거대하게 과장하고
상대방을 위협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방식은
가장 저열한 방식일 것입니다.

그 이후,
그 광고를 했던 기업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아주 부드러운 표현법으로
그 논리를 발전 시켜왔습니다.
자신들이 가장 높은 자리,
가장의 자리에 있는 나라로
대한민국을 재편하겠다는
욕심으로 말입니다.

이는 사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방식입니다.
일본군국주의와 박정희의 방법론을
광고를 통한 답습인 것입니다.





이미지란 본체가 아닙니다.
본체를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며
남의 삶을 위축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구한다면
세인의 질타를 받는 깡패의 방식과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요?

*

목구멍이 포도청이지만
포도청에 붙들려가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하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카피라이터가 씁니다.







2005.8.18
2005/08/18 00:00 2005/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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