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는 싸움

from 이야기 2005/10/05 00:00

요즘 초등학교 사내 아이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뭘하고 노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사내 아이들은
닭싸움을 하거나 기마전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닭싸움은 일대일로 싸워서 거의 진적이 없었습니다.
(역대 전적, 아마 300승 2패 정도?
다소 왜소한 체구를 보시면 의아해하실지도...)
기마전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승률을 자랑했는데
저는 주로 위에 올라가서 상대방과 싸우는
기수역할을 맡았지요.
한 때는 심하게 싸우다 보니
다급한 목소리의 방송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위험합니다!
지금 당장 그만 두세요."

그러던 어느 날,
어느 기세 좋은 팀과 싸운 적이 있습니다.
자기 팀이 허물어지자, 아이들은 갑자기
야,야 형들 불러라...하면서
어디론가 뛰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곧 나이 많은 아이들이 몇몇 몰려왔고
저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세찬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팀의 말이 휘청거리는 순간,
저는 이들이 학교 윗 동네에 있는
고아원의 아이들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힘이 빠졌고
맞서 싸워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에건 지는 걸 정말로 싫어했음에도
이 싸움은 그만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랬던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그 아이들의 기세가 슬퍼졌던 것 같습니다.
지켜줄 부모도 무엇도 없이 버려졌다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뿜어내는 맹렬한 공격.
박탈의 체험이 깊이 새겨진 어린 마음이 공격 받을 때
돋아나는 날카로운 발톱같은 것.



                                                                                       *horse with no name-2005.10.4


그 싸움의 승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당했던 강하고 집요한 공격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얼마 전 고향엘 가서
그 고아원이 있던 부근을 지나니
고아원이 사라졌거나 옮겨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맹렬히 달려들던 아이들도
지금의 제 나이가 되었겠지요.
버려졌다는, 외면되었다는
어린 마음의 상처들은 그 후로
아이들 마음 속에서 어떻게 자라났을까요?

질 수 밖에 없었던 그때의 싸움을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이겨야만 했던
어린 마음들이 떠올라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분노와 공격 속에 묶인 그 마음들이
사회의 잔혹함과 대면하면서
더 큰 상처로 깊어지지 않았기를...
이제는 거기서 자유롭기를...





2005.10.5
2005/10/05 00:00 200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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