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들

from 이야기 2006/11/09 00:00

제 사무실은 낡은 5층짜리 빌딩에 있습니다.

출입통제가 되는 큰 빌딩에서 일하다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건물에 있다보니
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휴지를 팔러 오신 할머니들,
외국인 봉사단이라고 하는
종교단체와 관련되어 있을 외국인들,
방향제 판매원들,
퀵서비스나 음식점 전단을 들고 온 이들,
신용카드 회원가입을 권유하는 사람들,
보험가입 권유자들,
생식을 배달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목탁을 울리며
탁발을 하시는 스님...

처음엔 이런 방문에 짜증이 나고
특히 동정심을 강요하는
할머니들의 화장지 구매 요구에
곤혹스러웠습니다.
이전처럼 번듯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마주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면
이렇게 대면을 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간 불편하고 또 마음이 부대끼기도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삶의 국면들을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러한 방문자들 때문에
사무실 여기저기엔 전단이 널려있고,
회의실에는 한 꾸러미에 만원씩 하는
낮은 품질의 화장지가 쌓여있습니다.





큰 빌딩들을 찾아갈 때면
소위 안내 데스크를 거쳐야 하는데
사실, 그 안내 데스크는
안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출입자를 걸러주는
차단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극단적인 측면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사람이 함께 나누고 살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최소한의 양심이 발동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화장지를 들고 울상을 짓는 할머니들의
그 연기같은 표정들을 막상 대하면
정말 싫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대하지 않는다면
값싼 연민을 팔아서
스스로 몇푼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삶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출근과 일, 퇴근과 회식, 휴식과 휴일,
건강을 위한 헬스와 비즈니스를 위한 골프,
TV가 보여주는 세상과 값싼 동정.
그 안에 온전히 닫혀버린 그렇게 자족적인 세상.
다른 삶의 국면에 눈 돌리지 않고
그 세상의 충실한 일꾼으로
평생을 바치도록 하는 수많은 제도들...

세상엔 양심의 발동을 원천봉쇄해주는
다양한 장치들로 가득합니다.
대리인,에이전트라는 제도는
기업, 혹은 집단의 이익을
잔혹하게 추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제도인 것 같습니다.
당사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와는 관련이 없는
제 3자가 개입하여
냉정하게, 소위 전문적으로
일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예가 있겠지만
'분노의 포도'같은 영화를 보면,
기업농이 시작되면서 농부들을 몰아내는데
자본주는 결코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리인이 와서 자신의 일을
전문적으로 해낼 뿐입니다.

대면을 차단하는 세상.
대면을 차단함으로써
공통의 기반을 지닌 인간임을
점점 더 잊게 만드는 세상입니다.


*

추석 얼마 전에,
할머니들이 오셔서 화장지를 들이미셨는데
못 사드려 죄송합니다.
추석날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이라도 몇푼 쥐어주시려고
그러셨을 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

"너희가 나그네였던 때를 기억하라."
구약 성경엔 이 말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방인이 되어
남의 문을 두드려 본 적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요?






2006.11.9
2006/11/09 00:00 2006/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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