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처럼 아끼던 조카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차지하고 떠났을 때,
마음 넓은 그였지만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신의 음성이 들려왔지요.

"고개를 들어라.
그리고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모든 지경이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길고 장황한 이야기에는
감동할 것이 많지만
제가 특별히 감동하는 것은
"네가 서 있는 곳에서"라는 말입니다.
저 멀리 어디에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

자신들이 따르는 선생이 떠난 후,
그들은 새로운 힘에 사로잡혔고
세상은 그들을 "새 술에 취했"다고 술렁거렸습니다.
제도권 교회의 표현으론 "성령"을 받은 것이었지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행동했고
세상을 변화시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
그 입구에 앉은 앉은뱅이가
동전 몇잎을 구걸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줄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그러자 앉은뱅이는
걸었고, 뛰었고,
신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신약의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 베드로.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참으로 감동적인 것이 많지만,
내가 특별히 감동을 받는 부분은
"내게 있는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남의 손에 있는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

갈수록 세상은
'내가 있는 곳, 내게 있는 것'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립니다.

우선은 광고가 그렇습니다.
이곳이 아닌 저곳을 욕망하게 하고
내게 있지 않은 그 무엇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일을 해왔고,
아직도 거기에 걸쳐있습니다.

또한 세상은
내게 있는 것, 내가 있는 곳의 무엇을
나누며 생길 수 있는
기적들을 가로막는 장치로 가득합니다.
우선은, 방송들이 그러하고
수많은 문화의 컨텐츠들이
그러합니다.

*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얼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날이 고립되어 가는 시간 속에서
어쩌면 잘못된 궤도 속에서 길을 잃는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을 늘상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이 곳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빈 손이지만,
지금 여기,
내 가난한 빈손으로 충분하다는
그 복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

한 해가 저뭅니다.
올 한해는 영상을 많이 만들지 못했고,
'아이를 굶기지 않도록 하는 일'에
줄곧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가뭇가뭇 기억날듯 말듯 하던 이야기가
결국엔 저를 구원하고 맙니다.

여기가 아닌 저기,
나의 것이 아닌 남의 것.
그것들을 탐하도록 부추기는 이미지를 만들어 오던
십 수년의 역사를 끝내고
용기를 내어 전진하라고
말해줍니다.

*

예수가 말했습니다.
"쟁기를 잡은 자는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





2006.12.26
2006/12/26 00:00 200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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