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소녀, 감 할머니

from 이야기 2008/03/10 00:00

열 다섯살,
어린 나이였다.

어머니는 플랫폼에 서서
눈길을 주지 못했고
열 다섯의 딸도
어머니의 눈을
바라 보지 못하였다.

어머니, 잘 있어요,
어린 딸아 잘 가거라,
인사도 못했는데,
기차는 움직였고
차창으로 얼핏,
서 계신 어머니를 본 것이
끝이었다.

각각 다른 자리에 앉은
언니, 오빠와도
아는 척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떠나는 고향.
기차는 긴긴 시간을 달려
해주(海州)에 도착했다.

*

38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
검문이 심했던 해주.

윽박지르는 보안대(保安隊) 사람에게
주눅이 들어 38선을 넘는다고
말해버렸고,
보안대에 잡혀갔다.

함께 잡혀간 언니가
보안대 사람과 싸우고 따져
밤늦게 풀려났고,
38선을 넘겨 줄
안내자를 만나기 위해 헤매다가
남의 집 헛간에서
잠이 들었다.

*

아침에 눈을 뜨니
다행히 그 곳은
안내자의 헛간이었고
그 집 마당에
처음으로 보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감나무 였다.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노숙을 한 뒤
처음 만나게 된 나무.
감나무는
이방(異邦)의
나무였다.





6.25를 겪고 결혼을 했다.

군인이었던 남편은
병이 들어
요양소를 전전했고
아들 셋을 데리고
버거운 인생이었다.

한 때는 죽고싶은 마음에
언덕을 넘다가
교회의 불빛을 보고
교회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

옷 만드는 일을 했고,
보험 일을 했고,
또 문방구를 열었고,
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거친 세상은
여자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살려는 의지와 기도를
비웃었다.

어릴 때 유복하게 자란 형제들은
험한 세상에서
자신의 앞 가림에 허덕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지 못했다.

*

아들들은 장가를 갔지만
아들네에 얹혀있는 것도 어려워
고민을 하다가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 몇달 일을 하면
얼마간 걱정 없이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날이 어려워갔다.
체류 허가는 짧아졌고
환율도 점점 나빠졌다.
일들도 줄어갔다.

그래도 고생하던 끝에
일본 국적을 얻게 되었고
근근히 살아가게 되었다.


*

일본의 치바(千葉).
가난한 연립 주택 곁에
감 나무가 한그루 있다.

일본에서 감은
대접받는 과일이 아니다.
가끔 새들이 와서 파먹을 뿐
그 감을 따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감을 따가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감 할머니'라고 부른다.

*

고향을 떠나 노숙을 한 뒤
처음 보게 된 감 나무,
그리고 노년에 맞이한
타향의 뜰에 서 있는
감 나무.
감나무는 여전히
이방의 열매이다.

고향은
감나무가 없는 곳.
온갖 좋은 과일들이
거두는 손길도 없이
열려있는 곳.

*




지난 번 치바에 갔을 때,
고모님이 얼린 감을 주셨는데
춥기도 했고
또 밥을 먹은 뒤라
먹기가 힘들었다.

하루쯤 머물고 갔으면 하는
고모님을 뵙고 그냥 나오는 길,
소반에 얹힌 감이
계속 생각 났다.


*

밤에 기도를 하게 되면
작은 고모님이
말년에 찾은 평안을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치바에 가게 되면
고모님이 주시는 감을
꼭 먹어야겠다.






2008.3.10
2008/03/10 00:00 2008/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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