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간간이 인터뷰를 했지만
이제부터가 아무래도 본격적인
작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산에 내려가서 다큐멘터리의
인트로에 들어갈 부분을 촬영했고
가족들을 인터뷰 했다.


1. 조방(朝紡)앞



아마도 1970년 이었을 것이다.
서른 중반의 아버지와 꼬맹이였던 나는 저 언저리에 서 있었다.
조방앞이라고 불리는 그곳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다큐를 찍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때 아버지가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보면서
혼잣말을 하듯 툭 던졌던 말이
30년이 지나서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곳에 고속버스 터미널은 없다.
다만 그곳을 가늠할 수 있는 시민회관은
건물들에 쌓여 위축된 모습으로 있다.  

  

아마도, 그때 아버지는
공장에서 쓸 공구를 마련하기 위해
공구상 골목을 다녀오는 길에
어린 나를 데리고 가셨을 것이다.

여전히 공구상 골목은 남아있었다.
그 골목을 향해 카메라를 놓고 찍고 있는 나를
사람들은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길이었을까 저 길이었을까,
어린 나와 아버지가 함께 서서 고속버스 터미널을 바라보던 길.
그때 아버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보시며
"저 버스는 한 번도 쉬지 않고 2천리를 달릴 수 있어..."
라고 말씀하셨고
그 2천리가 아버지 고향까지의 거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삼십년이 지나서였다.  



그 길도 그 모양대로 남아있지 않을 것고
그 때가 1970년이었는지, 그 다음해였는지도 불분명하다.
나는 무엇을 찍으려고 저길 갔던 것일까?

내가 찍으려 하는 것은 어떤 사실이 아니라
서른 중반의 아버지와 어린 내가 손잡고
무언가를 바라보던 '한순간'일 것이다.


2. 인터뷰



밤, 어머니의 집에서 내려다 본 부산항.

부산항을 내려다 보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항구를 오가는 바람결에
건너편의 불빛들이 가물거리며 반짝이면,
알 수 없는 새로운 은하에 당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리고 나즈막히 들리는 배들의 엔진음과
간간이 들리는 뱃고동...
그것은 마치 태속에 있는 아이가 듣는
어머니의 심장박동과 목소리인양
편안했다.

카메라가 어둡다.  좋은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오랫만에 뵌 큰고모님,
지난해와 다르게 눈빛이 흐려지셨다.
여든 다섯이 되시니 건강한 분이라도 어쩔 수 없는 모양.
때마침 생신이어서 집으로 모시고
간단한 생일상을 차렸다.

   

어머니와 큰 동생의 모습.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과의 인터뷰가
오히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삶과 깊이 연관 되어 있는 까닭으로
이미 가진 생각과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나의 생각에 끼워 맞추는 식이 아니라
말하는 이의 생각과 마음이 우선이 되는,
그런 인터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그 다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아버지가 떠나신지 오래되었으므로
동생들의 기억은 희미하다.
더구나 어린날 단편적으로 들었던
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서 좋았다.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곳.
아주 그럴듯한 조망을 지니고 있지만,
맘편히 그것을 감상하며 살 수 없는 것이
어머니의 하루하루다.
걱정없이 부산항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3. 만두



명절이면 고향집에선 만두를 빚는다.
아버지의 고향인 북쪽의 풍습이 남아있는 것이다.
만두피를 따로 팔지 않던 시절엔
밀가루를 밀어서 만든 만두피로
커다란 만두를 만들어 먹던 기억이 있다.
공장에서 만든 만두피를 사서 쓰는 요즘은
만두의 크기가 아주 작아졌다.



가족이라는 것이 유사 종교의 차원에 이른 나라.
이기적인 가족주의가 많은 것을 망쳐왔고
여전히 망쳐가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전 세대의 내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한쪽에선 정권을 세습하고,
한쪽에선 변칙증여로 기업을 세습하는
이 웃기는 나라에서  
가족이란 의미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가족이 우상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암튼, 형제들은 올 설에도 만두를 먹었다.  


4. 계획



심정적으로는 반쯤 찍은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찍어야 할 것이 많고
자료도 많이 찾아야 하고
여기저기 연락도 많이 해야한다.
시간과 여건은 여전히 모자란다.
여유가 있다면 조감독이라도 두고 싶다만,
혼자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혼자 인터뷰를 하며 찍다보니
가끔은 중요한 이야기를 놓치기도 하고
가끔은 턱없이 지쳐 나동그라진다.

이 다큐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사회적인 의미도 지닐 수 있겠으나,
그리 중요한 무언가를 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나에게라도 진실한 발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다.




2006.2.2
2006/02/02 00:00 2006/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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