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원 - 김규항

from 남의 것 2008/09/26 00:00
현실사회주의가 패망한 건 그게 사회주의라서가 아니라 전제정이었기 때문이다. 전제정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혹은 다른 무슨주의든 상관없이 망하게 되어 있다. 부르주아들과 자본 진영에선 당연히 그걸 ‘사회주의의 패망’이라고 대중들에게 주장하고 선전해왔다.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가 세계에 해악만 끼친 건 아니다. 만일 현실사회주의라는 거대한 왼쪽으로 당기는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나라들엔 복지라는 게 애당초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른바 ‘사민주의’라는 자본주의에 이식된 사회주의 시스템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이른바 사민주의자를 자처하며 ‘사회주의의 폐기’를 주장하는 바보들은 그 맥락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의 사민주의(민노당, 진보신당 등)가 여전히 기를 못 펴는 가장 큰 이유는 우파의 공격이나 모략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 세력이 지나치게 약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그 바보들이 소망하는 대로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사라져버린다면, 다시 말해서 사민주의가 한국에서 가장 극좌 세력이 된다면 한국에서 사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0’이 되는 것이다. 아마 ‘유시민 대통령’ 정도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다. 이념이란 본디 자기보다 왼쪽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오른쪽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법이다. 제 이념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사람이 가져야할 가장 합리적인 태도는, 나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 존중하고 나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 혐오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바보들은 존중해야 할 사람들은 혐오하고 혐오해야 할 사람들에겐 보기 불편할 만큼 관대하(거나 유착되어 있)다. 그러면서 만날 제가 세상에서 제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좌파란다. 이거야 원.



출처: 김규항의 블로그
http://gyuhang.net

2008/09/26 00:00 2008/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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