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주제 '거리'

카메라로 본 세상은 조금 달랐다.
그 동안 잘 보지 않고 살았던 것들을
좀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것을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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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십자가 보다 더 십자가다워 보이는 전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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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두고 바깥을 다니는 시간이 많다보니
이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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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버스 정류장에서 본 빌딩의 유리창.
맞은 편 빌딩의 유리창을 되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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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칭 감고 있는 저 전선을 통해선 무엇이 오가고 있을까?
전신주를 보면 세상 죄를 지고 있는 십자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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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어김 없이 핀다. 어리석은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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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어머니집 문 앞에 있던 창.  
이 창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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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러 가던 길에 찍은 홍대역 부근 골목길의 전기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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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겨울 낮의 2호선. 잠실 철교를 지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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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역 부근 골목길에서 만난 벽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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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부근에서 만난 낮달과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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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부근, 기우는 햇빛에 노란 물이 든 건물의 벽과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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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차장 입구, 철제 말뚝이 잘리고 그 속에 풀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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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코엑스 부근의 빌딩. 유리창을 닦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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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대한극장 뒤, 어느 건물 모퉁이의 전기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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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횡단보도에 남은 낙엽의 자국.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진채 도색을 했고 잎이 바스러지자
페인트가 벗겨졌고 잎의 흔적이 화석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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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익스테리어, 전선이 이루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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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테헤란로, 무심한 발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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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치바(千葉). 오래된 집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영도의 거리에 불쑥 들어선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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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빌딩과 공항터미널의 선들이 이룬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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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쯤에서 쑥쑥 솟아오르고 있는 막대 그래프.
과연 무엇이 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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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어디쯤, 건물의 유리창에 비친 앞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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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부근, 누군가 길가의 배전기에다
하소연 할 곳 없는 마음을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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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보도블럭. 어긋난 것은 왜 마음을 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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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도로변에 떨어진 은행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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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에 취한 날, 강남역 사거리의 빌딩들. 입체파의 그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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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귓속에서 빙빙 돌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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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역 부근, 쇠 기둥이 잘리고 그 속에 누군가 캔과 종이를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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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블럭 사이에서 자라는 풀. 걸어가는 듯, 춤을 추는 듯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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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봄이 오고, 역시나 피어난다. we will never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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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설치 미술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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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여러분들만은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지켜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국군의 날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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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먼지 낀 하늘, 먼지 낀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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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반듯하게 잘라주는 프레임은
시각을 분명히 해준다.
그래서 대상을 더 유심히 보게 하고
대상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지기도 한다.
그저 발치에 있었을 뿐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것들을 새롭게 보면서
작고 하잘 것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새삼 생각케 되었다.

또한 프레임은
대상을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선택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라진다.
자유이면서 동시에 위험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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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을 이미지로 담는 것은
어쩌면 비겁한 도피의 일종이 아닐까?
이미지에 담긴 대상에 대한 애정보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애정에 기울게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연약한 것, 버려진 것, 사소한 것을 잡아내지만
결국 동정적 시선에 머물 뿐,
프레임을 넘어 가는 이는 적다.
나 역시, 그랬던 것 아닌가?

암튼, 길 위의 시간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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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trv30, gs400, hv30
        2002~2009
2009/04/27 17:59 2009/04/2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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