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주제 '나무'

거리를 많이 걷던 내게 나무는 큰 위안이었다.
그래봐야 도로변의 나무들이었을 뿐이지만
언제나 거기, 무한한 침묵으로
서 있어 주었다.

카메라를 만난 후 생긴 가장 좋은 습관은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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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선대. 묘지 위에서 바람을 견디며 바다를 응시하는 나무.
죽음을 딛고 바람을 견디며 생명을 향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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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우리나라와는 생김새가 사뭇 다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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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진 가지 끝에서 잔가지들이 나왔고  
거기서 잎들이 돋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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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CM 프로덕션에서 밤을 새고 창을 보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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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쌩쌩 달리는 자동차에 밀려 도로변에 모여든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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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가을인데 떨어진 플라타너스 이파리. 멈칫, 놀란 나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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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와도 떨어지지 못하는 잎들이 있다.
하늘 손을 들고 기도하듯 텅빈 겨울을 구원하는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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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곁, 느티나무의 기다란 가지와 건너편 빌딩의 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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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아파트 개축 공사장. 나무 그림자가 여자의 사진 위로 떨어져
여자가 나무에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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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봄, 회의실의 창을 열고 나무를 보았다. 플라타너스는 늦게 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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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의 플라타너스와 행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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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래서 올려다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다. 하늘을 채우는 초록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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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초록의 플라타너스, 그리고 가로지르는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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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나무가 가로등에 살짝 기댄다. 가로등은 모른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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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사이의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떨어지자 여름엔 보이지 않던 창과 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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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올려다 본 겨울 플라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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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잎들 중에는 별 이유 없이 이렇게 상하는 녀석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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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물드는 나무도 있고, 더디게 물드는 나무도 있다. 사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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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갔을 때 보았던 네 갈래 잎을 가진 이파리. 나무 이름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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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붓에 먹을 입혀 죽죽 그으면 그려질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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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무덤 옆에 오랫동안 호랑이 발톱나무가 서있었다.
지금은 뽑아버렸지만 이 전에 이파리를 몇 따다가 책갈피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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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긴 가지들 끝에 간간히 이파리 몇 달고, 겨울 바람을 맞는다.
나무 이파리가 몇몇 달려있는 게 더 애처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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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5층까지 가지를 뻗던 사무실 곁의 나무.
이건 가지치기가 아니라 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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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무보다 늦었지만 기적처럼 잎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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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으로 내려온 햇볕이 빌딩의 벽면에 나무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무가지와 가지의 그림자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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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결코 다시 찍을 수 없는 테헤란로 중앙분리대의 플라타너스.
건너편 빌딩은 맞은편 빌딩을 비추고 잔 가지와 작은 이파리들이 정오 무렵의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무식한 가지치기로 이런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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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세트장 근처의 나무. 내 카메라로는 제대로 찍어낼 수 없지만
옅은 불빛에 그 모양을 드러내는 밤의 이파리은 얼마나 매혹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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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세찬 북풍이 불던 날, 출근하는 발치에 떨어져 있던 중국 단풍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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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마디를 뭉텅뭉텅 잘라낸듯한 이 무식한 가지치기를 보라.
덕분에 하늘도 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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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닥친 찬바람으로 떨어지지 못한 이파리들이 얼어버렸다.
매서운 겨울이었다.



*


이쁠 것 없는 길가의 장미를 묶어주는 이쁠 것 없는 빨간 끈.








나무 만큼 좋은 모델이 있을까.
포즈를 취할 순 없지만
가지와 잎만 흔들 뿐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 완벽한 수동성.

힘겨운 계절이 되면
잎을 떨구고서도
하늘을 향한 팔을 결코 내리지 않는다.
그 한결같은 태도.

나무를 보게 되면서,
말없이 잘려가는 가지, 떨어져 밟히는 낙엽을 보면서
내 속의 많은 혈기들도
조금은 누그러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상해가면서까지도
바라볼 것을 바라보는 그 자세를
조금은 배웠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다리를 쉬며 바라보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말을 걸듯 중얼거리기도 하고...

누구 하나 곁에 없는 순간에도
나무는 내 편이었다.











촬영: trv30, gs400, hv30
        2002년~2009년
2009/04/28 15:28 2009/04/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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