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모습

from 사진, 이미지 2008/01/31 00:00
우리가 얼마 전까지 경험한 가난은
대체로 한 장의 사진에 포착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행복도 한 장의 사진에
포착될 수 있었다.

한국이 일제를 거치고
소위 해방이 되고 전쟁을 겪으면서
느닺없이 닥쳐버린
생소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얼굴들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신 분은
최민식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 분은 50년이 넘도록
가난한 얼굴들을 찍고 계시다.

나의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위대한"이라는
수사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작가이다.
자신의 평생을 바쳐
가난한 얼굴들, 그 속의 아름다움과 존엄함을
여전히 보여주고 계시다.


                                             -1965년 부산, 최민식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는 말은
언제나 위험하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겉 모습이 달라졌다는 말이지
우리의 생존 조건 자체가 달라졌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여전히 가난은 존재한다.
물론 이 사회의 구석에
그리고 세계의 곳곳에
우리가 오래도록 보아왔던
그 가난의 양상들이 존재하지만
지금 여기 한국 땅에서는
가난의 모습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가난한 사람도
휴대폰을 들고 다니고,
가난한 사람도 차를 끌고 다닌다.
여유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

여튼, 가난은
한 장의 사진에 담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악행을 숨기는
이미지의 알리바이들을
만들어 내는 체제의 방법은
점점 더 교묘해져서
가난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웃의 아픔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카메라건 화폭이건
그 모습들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담아서 전해야 한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염려,
자식 교육에 대한 걱정,
그것들을 넘어서야 한다.

내가 지닌 한계 내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노력해야하고
무언가를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나아진다.
그것이 진정한 십일조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결코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의 선정적인
보도를 보면서
배설 하듯 욕을 하는
그런 생활 감정을 넘어서
무엇이 함께 사는 길인가를
잠시라도 고민해야한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가난의 모습,
그것을 관통해서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다듬어야 한다.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카메라를 들고
내 아는 이들의 얼굴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좀 더 힘을 내야겠다.






2008.1.31
2008/01/31 00:00 2008/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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