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from 나날 2009/05/29 12:12
 

중국 단풍 이파리에 햇빛이 머문다.
그 빛도 잠시,
곧 아파트의 그림자가 덮을 것이다.
그리고 저 푸르름도 잠시,
이내 가을이 되어 떨어질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아선 안되겠다고
나름 생각을 다지며 수년을 보냈는데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돌이키니 그 시간도 잠시.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걸까?


*

오래 잊고 있었던
아기장수 설화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설화라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공통점이라면
특출한 능력을 가진 이의
비참한 몰락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가난한 무지렁이 부모 밑에
특출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는 날개가 달렸다.
날아다니기도 하고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
재주가 남다르면 역적이 된다는 세속의 말을 따라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살아난다.
기득권은 그 능력에 긴장하고
결국 그 아이를 해치우기 위해
이성계를 보낸다.
아이는 이미 그가 올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콩 100개를 주며
잘 볶아놓으라고 한다.
그런데 그 어미는 콩을 볶다가
입이 심심해 한 개를 먹어버린다.
아이는 그 콩을 챙겨서
이성계와 대적하기 위해 나간다.
활의 명수인 이성계의 화살을
아이는 번번이 콩을 던저 떨어뜨린다.
그런데 아뿔사,
콩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다.
아이는 이성계의
마지막 화살을 맞고 죽는다.

기득권의 패악에 대한 미움과
민중의 좌절감이
절절이 스며있는 이 설화.
이런 이야기들이 지역마다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지난 역사가
변혁 자체를 회의하케 하는
억압으로 점철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내면화된 변혁의 불가능성.

특별한 능력은 언제나
기득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제거하려 들었던 조선.
지금 우리는
거기서 별로 나아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정들은
사실, 많은 실망을 안겨줬다.
이라크 파병과
대추리에 군대를 보낸 일,
시위 중인 노동자와 농민이
죽어간 일들은 
참기 힘든 일들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가 지녔던 이상,
그리고 숱한 양아치들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싸우며 살았던
그의 삶을 돌아보면
슬픔에 젖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꺾여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

이땅의 아기 장수는
언제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까?
2009/05/29 12:12 2009/05/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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