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담들었다가 자정 무렵 깨어 밖으로 나갔다.
비가 조금 내렸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태풍이 온 것도 아니고 장마비가 내린 것도 아닌데
심하지도 않는 비바람에 떨어진 이파리가 있었다.
가을 잎처럼 군데군데 갈색 상처를 가진 이파리.
*
일찍 사라지고 잊혀져버린,
반짝였으나 일찍 그 빛의 종적을 알 수 없는,
세상은 결국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을,
그런 존재들.
조금은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 속에 살아있던 이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왜, 나는 계속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사는 걸까?
나이 들도록 살아서 그런 기억을 안고 있는 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 없음과 망각에 저항하는 속내는 뭘까?
한때, 철기로 무장한 종족과 최후의 결전을 앞둔
청동기부족의 종말에 관한 드라마를 생각한 적 있다.
우리가 누리는 삶 아래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있는지.
우리가 무심히 걸어다니는 길 아래 얼마나 큰 울음이 있었는지.
우리의 삶이란 얼마나 큰 망각 위에 세워진 집인지.
아마도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을 거다.
*
지금 진행하는 작업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굽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계획들은
이루어져야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어쩌자고 다른 많은 이들이 필요하고
또 경제적인 부담을 요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것 필요없이 책상에 앉아
연필로 맞서는 일을 생각했던 어린 날의 선택이
더 현명한 건 아니었는지,하는
생각이 가끔 들곤했다.
하지만 며칠 전,
20년만 이걸음으로 걸어가자고 마음을 다졌다.
그 걸음이 어떤 결과를 낳건.
그렇게 마음먹고 돌아보니
지난 수년은 기적과도 같았다.
그렇게 걸어가는 것이다.
*
장마도 아니고 태풍도 아닌
겨우 6월의 비바람에 일찍 떨어져 버린 이파리를 보며
다시 내 처음을 생각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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