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major

from 나날 2009/06/16 14:58



다큐를 위한 곡을 만들 때는
치영이 음악 공책을 이용했는데
이번엔 좀 큰 노트를 샀다.

가끔 노래의 한 자락이 떠오르는데
그걸 가지고 노래를 만들고 싶다.
멋진 건 아니라 할지라도
내 노래일테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내 속에 울리는 곡들은
대체로 D major이다.
어릴 때, D, F#m, Bm, G, A7으로
이어지는 진행을 좋아했던 까닭일까?
지난 번 다큐를 위한 곡도
D major다.



*

'용산'에서 시국미사가 있었고
사제단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아주 강도가 높다.


*

<근대 한일 관계사 속의 기독교>를 다시 읽고 있다.
지금 해방 후 기독교계에 관한 부분을 읽는다.
한국의 기독교가 지금의 꼴이 되어버린 이유야
저 멀리서부터 찾을 수 있지만
세상의 권력과 결탁하여 힘을 추구하는,
반 성경적 성향들은 이때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뉴라이트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한 기독교 최우월주의에 기초하여 한경직은
기독교를 "최선의 정치 이념"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해방 후의 새로운 국가는
기독교의 정신적 기초 위에 세워진 '기독교 독립대한'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민의라는 공공성을 어떤한 제도와 구조를 통해 수렴해갈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제반 문제를, 기독교에 대한 주관적인 신앙 고백의 차원으로 해소해버리는
그의 독특한 정치윤리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는 국가 형태의 옳고 그름도 기독교 신앙의 유무로 판가름했다.
'인민주권설'에 근거해 세워진 대표적인 근대 국가로서 미국과 19세기의 프랑스를
들면서 무신론적 인민주권설에 근거한 프랑스의 경우가 테러가 성행하고
반혁명 운동의 봉기가 일어나는 등 19세기에 가장 수난을 당한 국가가 되었다고 논했다.
반면 국가의 헌법에 "감사하리로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는 우리에게
그 자신의 관헌을 택하는 권리를 주셨도다"라고 명기한 미국은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은 나라인데 그 이유는 '주권의 근본이 다 신에게 있다'는
기독교 국가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경직은 프랑스와 미국이
계몽주의라는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기독교적인가
비기독교적인가를 중심으로 오히려 양자를 첨예하게 대치시키고 있었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란 하나님이 그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차별이 없다는 신구약 사상에 연원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경직은 "민주주의라는 꽃은 기독교 문화의 밭"에서만 피는 것으로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정치 훈련을 받은 사람은 기독교 신자밖에 없다고
단언했다.(p372,373)

이후 이승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독재자와 살인자를 위해서 기도하던 한경직.
심지어는 살인마 전두환을 위해서도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행동들은
그의 문제적인 신앙 이상에서 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기독교적인 '신정정치'를 구현해야한다고 믿었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 기독교가 우월한 것이라 생각했고
기독교 세력을 제외한 다른 세력들,
특히 좌파 세력과 맹렬한 싸움을 주도했으며
그의 이념을 정점으로 모인 청년 단체들은
폭력과 테러의 선봉이 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는 일제에 굴복하고,
북에서는 공산주의와 끝까지 싸우지 않고
신도들을 남겨두고 월남한 그가
이승만과 손을 잡고 기독교 국가를 만들겠다며
다른 모든 이들과 적대한 것은
그의 진실한 신앙의 결단이었을까.
아마도 그럴거다.
그래서 더 큰 문제일 것이다.

그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경제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사회적 불균등을
'가진 자'들의 구제와 자선이라는 종교적 선행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사회 정의에 대한 제도적 관심을 도외시한 채
자유방임적 분배 구조를 정당화하고 사회적 불균등의 문제를
개인의 종교적 각성으로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드와이트 무디에 의해 완성된
미국 개신교의 '자본주의적 복음주의'의 윤리적 낙관주의와
감상적 도덕주의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었던 것이다.(p406)


부자들에게 돈을 몰아주면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간다는 이 정권의 거짓말도
이러한 미국 개신교의 자본주의적 복음주의 윤리와
닿아있다.

그에게 유토피아의 상상력이 작동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행일치'적 신앙의 진정성과 민족적 정체성이 만날 수 있는 접합점을
가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에게 조국은 마땅히
사랑해야할 대상이었으되, 그 안에서 사랑할 만한 가치를 조금도 발견할 수 없는
결핍의 총체였던 것이다. 조국이 결핍의 총체로 인식되었을 때,
조선이 처한 식민지라는 상황은 약육강식의 질서의 부당성을 자각하게 하는
불의한 상황이 아니라, 무능한 스스로의 열등성이 자초한 징벌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그는 근대 서구의 약육강식이라는 침략의 논리에 저항하기 보다는
오히려 포섭되고 만다. 근대서구는 저항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모방해야할
모범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적 진정성에 근거한 그의 '애국'은 결핍의 총체인
조국을 내면적으로 해체시키면서, 그 내실을 궁극적 이상이었던 미국 교회를
모방함으로써 채워가는 길 이외에는 없었다. 그는 미국적 세계관이 정초한
약육강식적 자본주의의 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고 그 틀 안에
사랑하는 조국을 안착시켜 안전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한경직은
해방 후의 한국 교회에게 과거 자신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약육강식이라는
저주스러운 레일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이번에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적자의 신분으로 상승해보려는 욕망의 구조를 주형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한경직이 보인 '신행일치'적 진정성을
계승하면서도 그가 만들어놓은 욕망의 구조를 기독교 고유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지양하면서 새로운 대안적인 세계관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p445,446)

복음서가 4개인 것은
각각의 집단적인 가치관에 맞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향한 복음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남의 교리와 체계의 강요는 결국
지금 개신교에서 보여주듯 폭력의 방식으로 귀결될 뿐이다.
신앙은 저 너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이들을 아픔을
싸안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며,
또 종교라는 것은 세상의 힘에 얹혀서 커져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억압으로 작용하는 그 힘과
갈등하면서 자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이사의 칼이나
바리새인의 돈과 사회적 지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겨자씨처럼 시작되는 것이고
결국 거기에 새들이 깃드는 커다란 나무를 이룬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을 상식적으로 읽어보면
권력의 기반을 통한 양적인 성장이란 것이
얼마나 비성격적인지 알게 된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식민지의 고통스런 상황을 고통스럽게 직시하면서
그것을 끌어안고 유토피아를 그렸던
위대한 예언자의 전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예수가 당시 교회라는 체제 안에 있었던가?
그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 있었다.


*

본격적으로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도 하고
사람들도 좀 만나야 할 때가 아닐까 했는데
곰곰히 생각하니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잠잠하기, 혼자 있기.

2009/06/16 14:58 2009/06/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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