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from 나날 2009/07/20 13:58

비가 잠시 멎었고 바람이 불었다.
아파트 옆에 마른내가 하나 있는데, 며칠 내린 비로 개울을 이루었다.
아이는 그곳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댐을 만들었다.
잠자리를 잡으러 온 아이들도 잠시 손을 보태었다.

아이가 기다리던 여름방학.
왜 어른에겐 방학이 없는거야,라고 내가 말했더니 아이는
인생이 원래 그런거죠,라고 대꾸했다.
어른스러운 말투를 흉내내지만 한 학기 동안 아이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
빠르게 어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어린 것이고
그래서 학교에 다니는 것이 버거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이가 아이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아이를 여전히 아이로 묶어두는 한 요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감상적인 사랑은 어느 모로 보나 문제인 것이다.
아이는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미들이 맹렬히 울기 시작했다.
나 또한 여름을 맞이하며 지난 상반기를 돌아본다.
많은 것들을 끊어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붙들린 무언가들을 확인하게 된다.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아무런 기대도 없이
고요히 여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브레송 영화를 다시 죽 본 것은 상당한 위안이 되었다.
나무는 열매를 맺느라고 요란을 떠는 법이 없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싸우는 것이다.

   

















2009/07/20 13:58 2009/07/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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