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덧옷을 입지 않으면 춥게 느껴진다.
어떤 나무는 여전히 푸른 빛이지만 몇몇은 잎이 바래고 있다.
틈틈이 세계문학 전집을 계속 읽고 있다.
'서머셋 모홈'이 아닌 '서머싯 몸'을,
'나다나엘 호돈'이 아닌 '너새니얼 호손'을 읽고 있다.
'솔제니친'은 이름이 그대로다.
고등학교 때가 자주 떠오르는 날들이다.
영화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수많은 사건들이 난무하던 고등학교.
맑은 날, 창 밖을 보면 영도의 서편 기슭에 걸친 수평선 위로
기다랗게 대마도가 보이곤 했다.
조용히 책을 읽고, 답답하면 남포동을 쏘다니다
302번을 타고 해운대로 바람 쐬러 다니던 때.
그 조용한 생활로 돌아가는 듯한 생각이 가끔 든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졸업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후로도 계속 나는 도피적인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다.
희망, 혹은 기대라는 것은 도피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은 대학교를 기대하고
대학시절은 직장을 생각하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가 없다.
거칠고 피할 길 없는 하루하루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빵같은 하루.
좀 쓸쓸해도 나쁘지 않다.
*
아이는 드럼을 배운지 3개월 째.
신기하게 사지가 따로 논다.
a day in the life/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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