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나날 2009/11/11 12:29


7년만에 사무실 창을 닦았다.
그동안 한번도 청소를 안하던 빌딩인데
웬일인지 얼마 전에 대청소를 했다.

늘 먼지 낀 유리창만 보다가
깨끗한 창을 보니 생소하다.

*

고등학교 때 맑은 날 왼편 창밖을 보면,
영도가 보였고 그 산 기슭에
가로로 기다랗게 대마도가  걸쳐있었다.
답답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자주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하지만 대마도 보다 더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작은 건물들이 이루는 오밀조밀한 시가였다.
햇볕의 옷을 입고 있는 거리를 보면서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그리곤 했다.

햇볕을 쓰고 있는 오밀조밀한 풍경,
그리고 멀리 버스가 지나가고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가보지 못한 고향이
그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바짝 창에 다가가서 보다가
어느 순간 유리창에 비친
내 눈을 보게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유리창에서 내 눈을 발견한 날
나는 아마도 '창의 기만에 속지 말 것'이라고
일기에 썼던 것 같다.

창이란 그런거다.
넘어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결국은 구분하는 어떤 것이라고,
오히려 벽보다 더 선명히
무언가를 나누어주는 것.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창이건
멋진 그림이 들어있는 프레임이건
우선은 시선을 빼앗지만
결국 인간의 절망감을
역으로 되비쳐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문이 필요한 것이다.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단순한 것이다.

*

7년만의 유리창 청소 덕분에
어릴적 오랫 동안 마음에 품었던 주제,
'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2009/11/11 12:29 2009/11/11 12:29
Tag // ,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