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from 나날 2009/11/16 15:54


아이가 접은 종이 학.
아이는 반짝이는 종이로 알을 만들어 속에 넣었다.
물론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학 속에 학 알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내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참으로 대화하기 힘든 존재이다.
어떤 일에 대해 정황을 알지 못하면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표정이나 사소한 동작같은 미세한 징후를 포착하고
실상을 제대로 알아내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다.
비밀처럼 나누어지지 않은 생채기는 평생을 간다.
아주 가끔 그것은 보석이 되지만
대체로 종양이 된다.

아이는 힘들게 6학년을 보내고 있다.
늦게나마 문제를 알게 되어서 조처를 했지만
1학기 동안 쌓인 문제는 아이를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다.
암튼, 또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 때문에 신경쓰는 날들이다.
아이는 웬만큼 잘 견디고 있다.
기특하다. 잘 하고 있다.


*


며칠 전 문득,
내가 어디론가 향해 가던 사람,
즉 길 위의 사람이란 걸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내 길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지만,
그야말로 주저 앉아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말하자면, 일어나 걸어야 하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문제들은
항상 나의 내면과 연관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상태가 취약할 때, 이런저런 문제가 생긴다.
중요한 존재들은 영적(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으로
이어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다시 걸어야 한다.

며칠 새 이파리들이 많이 떨어졌다.
겨울이 닥쳐왔다.
2009/11/16 15:54 2009/11/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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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필 2009/11/19 01:0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요즘 읽고 있는 책에 주인공과 아이의 대화가 나오는데 아이의 대사를 읽다보면 '얘는 왜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거야?'싶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게 오히려 현실감 있고 생상한 것이었구나 생각을 합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고 적절한 리액션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기보다 자기가 그 때 그 때 충동적으로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는,,, 아무튼 아이든 다른 누구든 그 눈높이를 맞추어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억지로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려 했다간 더 멀리 도망가버리기도 하고,,,

    정말 갑자기 추위가 닥쳤네요-매년 오는 추위건만 요즘은 왜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왕 추운거,,, 일기예보대로 오늘밤 눈이나 좀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네요.

    • 마분지 2009/11/19 15:03  address  modify / delete

      아이에게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아이들 스스로가 속에서 대면하기 힘든 일이어서 그런지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돌출한 이야기,
      그런것들을 세심히 따져보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구요...
      아이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
      정말 눈이라도 좀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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