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from 나날 2009/12/09 14:54


늦은 밤, 길을 가다 작은 교회의 성탄 장식을 보았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어린 날의 성탄절을 떠올렸다.

어른들을 따라서 새벽송을 돌았던 기억.
어선을 타고 먼 바다에 나간 아들을 위해 기도하던
흙집에 살던 할머니가 주시던 뜨거운 식혜.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우며 적산가옥에 살던 여인과
그 집에 걸려있던 '축 성탄'이라고 씌어진 등롱.
울퉁거리고 꼬불꼬불하던 깜깜한 밤의 길.
그리고 졸음을 못이긴 내가 엎혀가던 따뜻한 등.
그러다 문득 깨어 보았던 별빛.

사진처럼 전구를 이어 붙여 만드는 장식은
아마 80년대부터일 것이다.
하지만 성탄절에 대한 내 기억은 그 이전,
아직도 마루가 깔려있던 교회까지 간다.
가난하던 사람들이 모여든 교회.
위로받지 못할 마음이 위로를 받던 곳,
죽고싶은 마음으로 밤길을 나섰던 이가
그 불빛을 보고 들어와 밤을 지낼 수 있었던 곳.
삶은 늘 위기였고 그러기에
마루바닥을 눈물로 적시며 기도하던 사람들.
그 가난한 마음에 예수는 찾아왔다.

80년대 어느 시인이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우는 모습을 본 이후로
이 거리에서 예수의 모습을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위기이지만,
그것을 스스로 정확히 보는 이들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내 분요하던 마음도
조금은 고요해져야겠다.
그러면 10년 전 밤 거리에서 만난 그를
다시 만날게 될지도 모르겠다.



















villancico de navidad/ mangore


망고레가 크리스마스에 시골을 지나면서
어머니와 아이가 촛불을 켜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란한 축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조심스레 켜든 초라한 촛불.
그만큼 성탄의 본뜻에 가까운 것이 있을까.
2009/12/09 14:54 2009/12/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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