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읽기

from 나날 2010/02/16 13:40


일제 시대와 관련된 책들을 계속 읽게 된다.
소위 30년대 모더니스트로 분류되는
박태원과 이상의 소설을 읽는다.
흑백논리에 입각한 일제시대에 대한 역사교육과는
정말 다른 호흡으로 그 시대가 읽힌다.
카페, 전차, 백화점, 키네마, 연애, 도쿄, 재즈, 꼭또, 조이스, 정신분열...
하지만 그들의 일상에 스며든 어둠이 읽힌다.
그리고 큰 길을 벗어나 골목을 접어들면
엄습하는 시대의 일그러짐과 더러움도 보인다.
모던 보이(modern boy)였던 박태원이 월북하여
숙청을 경험하고 말년에 실명한 상태에서
'동학농민전쟁'을 구술하여 완성한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국문학사에서 개론적으로 배웠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구분 역시 편의적인 도식이거나
흑백논리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민하고 정직하게 시대를 감각했던 이들은
당연히 어둠을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당대의 고통을 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박정희의 시대의 대부분의 삶이
압제과 신음만으로 선명히 구분되지 않듯,
일제 시대도 친일과 항거만으로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너도나도 이명박을 욕하면서도
그가 표상하는 삶에서 온전히 벗어난 이들은 소수다.
그렇다면, 그 넓은 중간지대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바른 지향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람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새롭게, 지난 시절에 씌어진 소설을 읽으면서
내 속에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흑백논리의 성향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나의 근본주의적인 태도에 대해 돌아보기도 한다.

모든 권력은 기억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한다.
그것을 흔히 역사라고 부른다.
과연 우리는 불과 얼마되지 않은 수십년 전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또 지금의 시대는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이런 생각들에 이르게 되니
나의 다큐 작업이 점점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

덩달아 나쓰메 소세키와 다자이 오사무도 읽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이상하게도 거의 종교적인 위안을 준다.




 
2010/02/16 13:40 2010/02/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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