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음악

from 나날 2009/03/09 00:00
 

지난 토요일은 오랫만에
외출을 했다.
다녀오는 길에 잠시 공터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doors를 들었다.
저편에선 아이들이
야구연습을 하고 있었다.

문득, 2009년의 봄 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60년대의 음악을 듣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칭 '70,80 음악' 등에서 보여지듯
추억이라는 이름 아래
감상적으로 소비하는 음악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향유하며 듣는다는 것.
풍차를 거인이라고 생각하고
불끈하던 돈키호테까지는 아니겠지만
시대와 동떨어진 무언가가
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반면,
지금의 음악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 시절의 요소들을
조합해낸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고
생명력은 거세되고 달콤하게
재조립된 음악을 듣는 것은
지나치게 맛이 풍부해서 먹기 싫은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 것이다.
물론 가끔씩 깜짝 놀라게 하는
음악들도 있다.


*

그 유명한 '20세기 소년'을
9권까지 보았다.
아이가 치과에 가서 1.2권을
빌려오는 바람에 그만큼 보다가
그 뒤가 궁금해서 몇 권을 더 빌려보았다.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할만한 요소들이
많은 만화였다.

고등학교 때가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자습시간에
윤리교사가 들이닥쳐서
불시에 가방검사를 했고
담배를 소지한 녀석,
칼을 소지한 녀석들이 적발되었다.
그때, 블랙사바스(black sabbath)의 빽판을
들고 온 녀석이 있었다.
천사들이 담배를 물고 트럼프를 하는 그림이
그려진 자켓이었다.
녀석 또한 훈육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윤리교사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떠들어댔다.
쇼팽과 슈베르트의 우아함.

물론, 쇼팽과 슈베르트도 좋지만
블랙사바스도 그만큼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 나는 화가났고,
점심시간에 학교의 방송실을 찾아가서
그 불순한 음악을 틀었다.
점심시간 내내 들리던 헤비메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윤리교사는 아무런 생각없이
점심을 잘 먹었을 것이다.


*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머리가 허연 아저씨가 운전하면서
존 레넌을 듣는 것을 보았다.
우리 나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일본 문화의 특질은
'의미부여'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어떤 문화이건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자기 방식대로 수용을 하는거지만
일본은 유난히도 호들갑을 떨면서
그 의미를 부여한다.
아마도 그래야 안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선을 그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생명력을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그 감성들이
존중받는 방식이기도 하다.

20세기 소년을 보면서
사라져버린 노래들
사라져버린 풍경들
사라져버린 사람들을 생각했다.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지만
어떻게든 중요했던 시대를 놓지 않고
표현해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끔 중요한 시절들을 돌아보는
영화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한 시대가
어떻게 그 속에서 살아나는지
또한 이어지는지.


*

60년대의 음악을들으며
2009년의 아이들을 바라보던 나는,
과연 무엇일까
다시 생각 해본다.









soul kitchen/ doors


2009/03/09 00:00 2009/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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