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의 편지

from 나날 2010/03/16 16:40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아이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책꽂이 구석에 조그만 유리병이 있었다.

몇 달 전에 아이는 이걸 만지작 거리며 내게 물었다.
이걸 바다에 띄우면 누가 받게 될까?
병의 상태를 보니 제대로 봉하지 않아서 물에 잠기겠지만,
나는 그 속에 써넣은 내용이 궁금했다.

내가 만약,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에게 어떤 말을 건넨다면.
거기엔 과연 어떤 말을 써넣을 수 있을까.

홈페이지를 열었던 것은
아마 그런 낯모르는 이들을 향해
내 마음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는 행위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깊은 밤, 라디오를 들을 때 어둠의 저편에
같은 음악을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을거라는 안도감과
그렇게 이어지는 안온한 세상을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

2년 전 쯤, TV에서
대마도에서 부산으로 유학을 온
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장마철이 지나면 해변에 밀려들던 한국의 쓰레기들,
비닐 봉투에 씌어진 생소한 글자와 낯선 물건들을 보고
물 건너의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작은 것들인지 모른다.
'왜 나는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라는
유명한 작가의 수필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사람이 작은 일에 분개하는 것은
사람이 작아서가 아니라
작은 일들을 통해서 큰 일들이 찔러오기 때문인 것이다.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있기 때문이다.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을 품을 수 있다.
finitum capax infiniti.

*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간 후,
얼굴이 밝아졌고 다시 명랑모드로 돌아가는 듯하다.
참으로 다행이다.

과연, 저 병 속에 무얼 써서 넣었는지
다음에 물어보아야겠다.








2010/03/16 16:40 2010/03/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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