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

from 나날 2010/04/19 14:17


얼마 전에 치영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북극 곰이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 새끼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1983년 오늘, 즉 4.19 기념일에 눈이 내렸다고
누군가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올 봄의 저기온은 유난스럽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차가운 기운이 아래로 내려와
날이 서늘한 것은 아닌지.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멕시코 만류가 흐르지 않아
유럽과 미국 동쪽에 빙하기가 올거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아파트 단지의 벚나무와 산수유 사이로
푸른 잎들이 나기 시작하는데 날은 쌀쌀하다.

오늘은 독재자 이승만을 쫓아낸
4.19혁명 기념일이다.


*

토요일엔 아주 오랫만에 옛 영화를 보았다.
엘리아 카잔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에덴의 동쪽'을 보았다.
그리 당기지 않았고 역시나 별 재미는 없었지만,
오랫 만에 극장을 찾았고
영화를 보고나서 재필씨와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브레송과 오즈의 DVD를 빌려주었고
그리고 얼마 전에 고려대학교를 자퇴한
김예슬씨의 책을 받았다.
자신의 선언을 조금 더 풀어서 쓴 것이다.



이 선언을 보았을 때, 좋았던 것은
그것이 '나는'으로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세대는 '우리'로 시작했다.
눈앞에 명확히 보이는 강고한 군사독재앞에
'우리'로 모여들었던 것이 당시의 운동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라는 것을
포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암튼, 짧은 선언에서 읽을 수 없었던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을 읽어서 좋았다.
대자보에 붙인 선언문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건 더 근본적인 선언이다.
88만원 세대가 188만원 세대가 되게하자,라던가
신자유주의자들의 악행을 멈추고
약자들 또한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그러한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으로
자본의 구조속에서 나라는 개인성을 지닌 주체로서
바른 삶을 위해  연대하며 살겠다는
더 적극적이고 래디컬한 이야기이다.

진보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또, 고대 정도나 자퇴해야지 주목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나는' 이라고 시작하는 이 선언은
오랜 의미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가끔은 견딜 수가 없다.
때로는 모든 것이 충만하고
또 불안정함조차 기쁨으로 다가오지만
가끔은 견디기 힘들다.
그 지점에서 노래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고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고
아무 것도 그리워하지 않고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고
아무 것도 미워하지 않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기억마저도 내려놓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밀쳐둔 쉼이
얼마간 필요하다는 거다.
 
 


 


  
2010/04/19 14:17 2010/04/1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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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필 2010/04/26 07:4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ㅡ^
    빌려주신 브레송 dvd를 요즘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사형수 탈옥하다,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아마도 악마가 순으로 보고 있는데요. 사형수 탈옥하다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탈옥 영화이기도 하지만 또 기존의 체제 안에서 저항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악마가는 아직도 좀 후유증이 있을 정도로 냉혹함이 느껴졌던 영화였구요. 공통점은 브레송의 영화들은 보고 난 다음 그 이미지가 마치 각인되듯이 오래오래 남는 다는 것 같습니다. 뭔가 이 안에 순수한 보석이 담겨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요즘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데 자꾸 브레송의 영화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스스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ㅎㅎ

    이번주 부터 시네마떼끄에서 러시아 모스 필름을 상영하더라구요. 흔치않은 기회이고 저 당시 영화들이 꽤나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꼭 몇 편 챙겨봤으면 좋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 마분지 2010/04/26 16:42  address  modify / delete

      정말 영화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미지들이 더 각인된다는...

      저도 '무세트'를 스크린으로 다시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악마가'의 가슴이 콱 막혀버리는 암담함이란
      정말 뭐라 말 못하죠.
      그런데 저는 주인공이 죽기 전에 길을 가다가
      열려진 창으로 TV가 나오는 집안을
      잠시 들여다보는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모스필름이라..저는 못 본 것이니까
      시간을 한 번 내서 봐야겠습니다. 주말은 힘들듯 한데...
      암튼, 저도 시간표를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조만간 뵙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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