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의 얼굴

from 나날 2010/05/07 23:00

 

이상(李箱)의 얼굴은 주로 흐릿한 것만 보았다.
작은 사진을 억지로 확대한,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대체로 콧수염을 달고 있는 사진.
 
그러다 인터넷에서 선명한 정면 사진을 발견했다.
좌로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이다.

이전에 보아왔던 흐릿한 사진은
마치 전설 속의 천재같은 어두운 아우라를 더 강조하는 것 같았는데,
팔짱을 끼고 멜방과 넥타이를 한 모습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이 사진은 기분이 다르다.
대단한 포스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시계와 벽면 그리고 액자 등의 배경 때문인지
실제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사진을 찍은 후에 이상은 도쿄에 갔을 것이고 거기서 죽었다.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 유치장에 잡혀들어갔다가
죽을 지경으로 결핵이 심해진 즈음에 풀려나  
구단시타(九段下)의 하숙집에서 이승을 떠났다.
 
이전에 도쿄에 갔을 때, 머문 곳이 그 부근이었고
내가 걸어다녔던 길도 위의 사진의 주인공들에게 익숙한 길이었을 것이다.
오차노미즈와 유시마, 짐보초와 아사쿠사와 간다.
무심히 걸었던 길이 그들이 걸었던 길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새롭다.
다시 도쿄에 가게 될까?

1930년대에 관한 책을 조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지식인들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배회하던 막다른 골목 길,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다.
사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어떤 통념적 이미지,
기행과 기벽과 술, 그런 것들이 많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13인의 아해가 막다른 골목길에서 질주하던
1930년대를 생각한다면 더욱.





2010/05/07 23:00 2010/05/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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