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시간

from 영도 影島 2010/05/25 20:00

마음 같아서는 부산이 아니라
아는 사람 없는 바닷가로 가서 며칠 쉬고 싶었는데
결국 부산에서 머물렀다.

많이 걸었다. 하루에 7,8km 걸은 것 같다.
걸어다니며 찍은 몇몇 사진을 올려본다.

*



동삼동 패총에서 조금 더 내려가서 언덕을 넘은 바닷가에서 본 수평선.
신석기 시대부터 저 바다를 넘나들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오래 전부터 바다는 저렇게 무표정하게 있었을 것이다.

*



어린 시절 놀러가서 보았던 바위들을 다시 보았다.
바닷물의 소금기와 바람, 그리고 따가운 태양에 의해서 천천히 바스러지고 있는 바위.
모든 것은 소멸하는 법이라고 바위는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져도 바다와 바람, 태양은 남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그 모두를 날려버리고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요즘 자꾸 인간의 종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



해양대학이 있는 아치섬의 가파른 기슭과 부산항 건너편의 아파트.
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저런 엉뚱한 풍경을 만들고 있는 아파트는 아주 무례해 보인다.

아파트가 들어선 용호동은 한 때, 한센병자들이 모여사는 곳이었고
부산 시내의 계란들은 상당수가 그곳의 양계장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치섬에서 오래 전에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큰 칼, 장신구 등과 함께 묻힌 족장쯤 되는 이의 것이었다고 한다.
왜 섬에다 큰 무덤을 만들었을까?

*



바닷가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쌓였다.
깨끗한 해변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 '뗏마'라고 불리던 노젓는 배를 타고
더 아래쪽 바다로 내려가곤 했다.
하루 종일 수영을 즐기다가 노곤한 몸으로
배를 기다리던 오후의 비낀 햇살이 떠오른다.

아직도 오다니는 배가 있었다.

*



자갈치 시장 부근, 바다를 향한 적산가옥(敵産家屋).
해방이 된지 60년이나 지났지만, 부산엔 일본식 집들이 제법 남아있다.
자갈치 시장의 건어물 상가는 낡긴 했지만 일본의 상점가 같다.
일제의 흔적들을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직시해야할 역사로서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점점 사라지고 있다.

*



일본식 주택들이 많이 사라지는 추세인데 반해
일본식 공장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부근의 공장.
조일전쟁 때, 사츠마번의 군선들이 정박했다는 자연제방 부근이다.
절영도 왜관이 잠시 있었고, 해수온천도 있었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 매립이 되어 공장들이 들어섰고, 유곽도 생겼다.
아직도 많은 일본식 건물과 집들이 모여있다.

*



골목길 양쪽의 일본식 집. 기와를 바꾸었다.

중학교 3년 때, 외가가 일본식 공장에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거기서 사촌형과 함께 몇 달을 지낸 적이 있다.
아마도 '대한도기'라는 공장이었던 것 같은데,
대한도기는 6.25때 이중섭 등이 도기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어릴 때 집에서 새우나 도미, 소나무 등이 그려진 도기를 사용했는데,
어쩌면 이중섭이 그림을 그린 도자기 위에
고등어 구이를 놓고 먹었을지도 모른다.
 
*



닫힌 가게의 문. 어릴 때 가게를 '점방'이라고 불렀다.
저런 문 위에 간판이 달려있곤 했는데
태풍이 불면 간판이 날려 떨어지기도 했다.

*



다음 날은 빗속에 바다가 숨어버렸다.
그래서 바닷가에 갈 수가 없었다.
어쩌면, 바다와 태양을 보면서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도망가는 마음을
하늘이 막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부산에 가면 찾게 되는 할리스 커피.
광복로 초입, 옛 미화당 백화점 부근에 있다.
그곳의 흡연실은 바깥으로 창이 나있고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남포동, 광복동엔 일본사람이 정말 많고,
러시아 사람, 중국사람들도 많다.

유명 브랜드 샵과 비 맞는 연등의 조화.

*



중앙동에서 부두로 가는 길에서 보는 집의 벽면들.
여러 층의 시간이 모여있는 곳이 부산이다.

*



불쑥 솟아난 크레인.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돌출한 것들, 충돌의 이미지.
좀 비약적이고 엉뚱한 말인 것 같지만,
이런 이미지들을 보면서
몽타쥬, 누벨바그 그리고 비틀즈의 황당한 코드 진행을 떠올린다.
사람은 서로 부딪혀 정돈되지 않을 것 같은 많은 것들을
동시에 떠 안으면서 그 속의 리듬을 찾아낸다.
산업시대의 충돌하는 바이털리티가 이룩한 리듬감.

모던 락의 우울하고 미세한 표현법은
기계 공업적 세계의 리듬이 사라진 후
내면으로 잦아든 정서에 근거하는 게 아닐까.
 
*



영도다리 아래에서 큰 길로 올라가는 계단.
70여 년을 견디다 보니 돌계단도 기울었다.
저기를 올라서서 왼쪽으로 돌면 가수 현인의 노래비가 있다.
특유의 비브라토가 끊없이 들려온다.

*



현재 옛 영도다리는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전까지는 인도교로 사용되고 있다.
다리의 중앙선을 중심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



아래로부터 영도다리의 난간,
그리고 임시로 만든 가교의 난간
그리고 부산대교의 아치.

*



옛날에 영도다리를 들어올리던 체인을 구동하던 부분일 것이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낙서를 해놓았다.
3사단 수색대 애들아, 무사히 제대하거라.

*



남포동의 버스 정류장에서 찍은 사진
개인적으로는 저 부산타워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국 전통의 팔각지붕을 얹었는데,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디서 보아도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
뭐, 그래도 서울역의 물레방아 보다는 낫다.

*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의 일부와 옆의 빌딩, 그리고 부산탑.
한때 미국 문화원으로 쓰였던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은
지금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



용두산 공원에서 바라본 영도의 비탈.
6.25 이후에 부산의 비탈길에 다닥다닥 붙여지은 집들이
그대로 남아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다.
옥색과 하늘색, 그리고 살구색 등 페인트로 칠한 채도가 낮은 건물 색.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산 주택가 특유의 색이 되고 말았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구마를 재배했다는 조내기.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부근에 이름으로 남아있다.

'조내기'의 '조'는 고구마를 심도록한 통신사 조엄의 이름에서 나왔고,
'내기'라는 말은 출신, 근원을 말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조내기 고구마'는 통신사 조엄이 심어서 기른 고구마라는 뜻이다.
원래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왔다고 하는데
맛이 좋아서 나중에는 오히려 대마도에 가는 일본인들이
선물로 사가지고 갔다고 한다.

어릴 때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있으면
'서울내기 다마네기(양파) 볶아먹고 지져먹고'...하면서
노래로 놀리던 일이 생각난다.

*



어린 시절 가던 목욕탕의 굴뚝.
목욕탕은 사라지고 굴뚝만 남은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갔는데
목욕을 마치고 나오며 문을 열고는 깜짝 놀랐다.
눈이 내려 하얗게 거리를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산에는 눈이 드물다.

어린 시절 이 거리에 있던 가게 이름들이 생각난다.
묘향정(妙香亭)이라는 중국집, 옥강(玉江?) 이용원,
북청상회(北靑商會) 등 이북 출신들이 만든 가게가 많았다.

*



돌사진을 찍었던 사진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여전히 같은 이름이다.
매부리코에 점이 있고 머리 숱이 적던
고갱을 닮은 사진사도 아직 있을까?

*



영도의 방파제와 등대.
그 옆으로 부산항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교각이 들어섰다.
건너편 감만부두를 넘어 우암쪽으로 다리가 생길 보양이다.
말 그대로 '하버 브릿지'가 되겠다.

어릴 때 뗏마를 타고 방파제로 올라가면
등대가 까마득히 보이고 웬지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태양과 일렁거림과 눈부신 하얀 색의 등대.
'태양 때문에'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심정.

*



고등학교 이후론 가본적이 없는 송도 해변.
안개가 가득 끼어서 수평선이 숨었다.

*

부산은 개항과 일제와 6.25 등이 휘몰아쳐 온 도시이다.
눈길을 조금만 돌리면 우리 근대사의 면면들이 보인다.
그리고 까마득한 옛날의 유적도 있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기 때문에
중앙동 동광동, 그리고 차이나 타운 등의 사진이 없다.
그 거리를 걷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이다.

이번에 부산 거리를 많이 걸으며
'부산의 시간'이르는 주제를 하나 얻었다.








   
2010/05/25 20:00 2010/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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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 2010/06/08 03:3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부산에서 꽤 많은 걸음 하신거 같네요.
    전 당일치기로 왔다 갔다하느라 제대로 본것도 없고 남은것도 없네요..
    언제부턴가 여유란 말이 제생활속에서 찿아보기 힘들었던거 같습니다.

    내일은 회사에서 래프팅 갑니다.. 직원이 2000 명이 넘다보니. 왁자왁자~ 아 ~ 끔찍합니다.. ㅜ.ㅜ

    • 마분지 2010/06/08 14:44  address  modify / delete

      지난 추석, 설 연휴를 모두 쉬지 못해서
      답답하던 마음에 그냥 확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덕분에 아프던 다리가 좀 나아졌습니다.

      옛날에 다니던 회사에서
      동강 래프팅에 끌려간 적이 있었지요.
      가는 걸음은 정말 싫었는데
      물줄기를 타는 것은 또 상쾌하더라구요.
      그래도 그렇게 가기 싫은 곳을
      단체로 가는 것은 끔찍하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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