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사람

from 나날 2010/06/01 13:44


지난 주 선배를 만나던 건대 부근의 하늘에서 본 밝은 별.
카메라가 흔들려 곡선이 되고 말았다.

*

일 년에 몇 번 정도,
친구의 집에 가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 친구가 결혼을 했다.
그럴 시간과 공간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그나마 그것이 위로였는데...

어제도 노래를 하나 만들었다.

*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 21>을 다시 읽고 있다.
결국, 칸트의 윤리학에 관한 이야기인데
전보다는 좀 더 꼼꼼히 읽고 있다.
내 속에 일렁이곤 하는 불편한 감정들의 정체를
조금은 선명하게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의 용어를 옮겨 쓰자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도덕'과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선 세계의 '윤리'
그 둘의 상충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물론 <윤리21>은 전쟁의 책임이니 하는
커다란 이야기를 위한 강연을 옮긴 것이지만,
내가 속했던 곳에 묶여있으면서도
더 큰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던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세계가
칸트의 윤리와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을 새삼하게 된다.

*

속으로 병이 들어가고 있었겠지만,
회사를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그 울타리를 넘어선 것을 생각치 않던 시절은
내 속을 후벼대는 고통이 그리 많지도 길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걸음을 하면서 부터
내 속에 있던 많은 것들이 들끓고 일어났고
없는 줄 알았던 공격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들도 선명히 보게 되었다.
또한 어쩌면 그런 불안정한 지점에서
소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태어난다는 사실도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는 사람의 연약함이 싫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리고 서투르고
그래서 이것저것 부딪히는
내 어리석음의 탓이 크겠지만 말이다.
베를린의 하늘에서 떨어져 사람이 된 천사는
아직도 자신의 사람됨을
그저 기뻐하고 긍정하고 있을까?
연약하고 상처받고 위로가 필요하고 남루한.

가끔은 성자(聖者)를 동경하던
고등학교 때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성자의 길이 아니라
병자의 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로서 걸어가는 것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이다.

*

암튼 <윤리21>을 읽는 것은
조금은 위안이 된다.
조금 담담해진다.
 


2010/06/01 13:44 2010/06/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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