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from 사진, 이미지 2010/07/01 14:07


CD나 DVD에 옮겨 두었던 사진들을 다시 찾아서 본다.
편집에 많은 요소가 들어가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다 훑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진들은 찍힌 대상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찍은 당시의 내 감정과 상태들을 되비쳐 주기도 하므로
흐려진 것들을 다시 상기 시켜주기도 한다.

위의 사진은 2007년 6월 6일의 달.
모든 것에서 까마득히 멀어졌다고 느끼던 때의 사진이다.
저 하늘의 달이 가장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GS400을 장만하고 찍은 사진들의 짙은 색감은
풍부한 색 때문에 오히려 당시의 감정을 더 잘 드러내준다.
나무와 빈 골목, 전기줄과 그림자들, 텅빈 전철...


*

어쩌다 보니 '타인의 고통'을 다시 읽고 있다.
극단적인 고통을 보여주는 전쟁 사진, 전쟁 이미지에 관한 책이다.
폴 포트 정권 시기 캄보디아의 툴슬랭 감옥의
수감자들을 찍은 사진이 몇 장 실려있는데
죽음을 앞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중에는 갓난 아이를 안고있는 여인이 있는데
갓난 아이는 잠들어 있다.
그 사진에 찍힌 이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고
아마 갓난 아이도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은 그 죽음 직전의 공포와 체념, 무지를
영원히 잡아두고 있다.

한 때, 분신(焚身)의 사진을 보며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촬영하는 포토그래퍼의
분열적인 상태에 대하여 오랫동안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잔인한 일이다.

책의 몇 줄을 옮겨본다.
'사진 없는 전쟁, 즉 1930년 에른스트 윙거가 관찰했듯이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는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곧 사진을 찍는 행위인 것이다.
윙거는 이렇게 썼다.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매우 꼼꼼히 보존하려는 행위와 자신이 지닌 무기로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몇 초, 몇 미터 단위까지 추적해
그들을 섬멸하려는 행위는 모두 똑같은 사고방식에서 수행된다."'

'타인의 고통'은 전쟁 등 극단적 고통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한 이미지 약탈은 지금의 TV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피를 흘리거나 절단된 신체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캠코더를 처음 샀을 때, 촬영한다는 뜻의 'shoot'이
총을 쏜다는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유심히 생각했었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는 캠코더로 무언가를 어느 만큼 찍어낸다는 것은
칼로 필요한 부분 만큼을 도려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카메라는 총이며 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프레임이라는 것도 무엇가를 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잘라내고 배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것이
당시 내게 중요한 것이었다.













 



2010/07/01 14:07 2010/07/0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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