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날들

from 나날 2007/02/21 00:00
*

길지 않은 설 연휴.
날이 참 따뜻했다.
시간이 없어 어디 들러볼 곳도 없었지만
지나치는 차창으로 본 햇살과 구름은
너무도 좋았다.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사촌형도 못 만났고
어른 들께 인사도 다 못드리고 돌아왔다.
그냥 테이프 하나 정도,
오랫만에 모인 가족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스케치만 했다.

*

그래도
용두산 공원에서 있었던
최민식 선생님 전시회에는 갔다.



직접 사인을 하신 사진집에
내 이름을 써주셨다.

그리고,
댁에 사진집이 많이 있으니 원하면 방문을 하라고 하시면서
전화 번호도 적어주셨다.
정말 찾아뵈어도 될까요,라고 했더니
정말 괜찮으시다고 하셨다.

선생님을 처음 뵙고 많이 기뻤다.
내게는 희망의 증거와 같은 분이시다.
사진집과 함께 산 자서전을 읽었는데
이전의 수필집 보다 훨씬 좋았고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

50주년 기념 전시회다.
50년간 가난과 탄압과 싸우시면서
사진을 찍어오신 것이다.
한 5년 비디오 찍었다고
찌질대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



오가는 기차 안.
사람들의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는 곳에
LCD모니터가 있다.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는 곳...

KTX뿐만 아니다.
역, 전철, 버스, 명절 안방의 주인노릇하는 TV...
너무도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시선을 점유하고 있다.
남다른 내용과 자극으로
시선을 빼앗는 방식을 넘어서서
시선을 '선점'하고 있다.

진정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열망.
바른 이미지에 헌신하겠다는 순수한 소망.
이런 것들에 느긋한 미소를 날리면서
시선들의 선점하고 있는 그 수많은 이미지들.
그것들은 대저 어떠한 것들인가?
살펴보면, 한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이미지가  하나의 완결된 표현 속에서
어느 자리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듯,
나름 완결된 표현물들은
사람들의 생활의 동선,
혹은 사람이 접하는 미디어들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물론, 가치도 달라진다.

재작년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전시 관련 글들을
처음으로 주의깊게(?) 읽어보았는데
그 많은 기획 의도에 나오는 공통의 단어가 '소통'이었다.
과연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던 수많은 전시들은
얼마 만큼이나 소통을 했을까?

지난 수년간
내가 작업을 해오는데 있어서
힘이 빠지고 절망한 지점들이
바로 그러한 지점들이었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통로들은 이미 선점되어 있다는 점.

대안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나
독립영화 전문 상영관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맥락과 닿아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한 시도와 노력이 있고
얼마만큼 성과를 얻어갈 수도 있겠지만
의미있는 투자를 할 줄 모르는
천박하고 거만한 이땅의 자본은
결코 쓸만한 채널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할 것은 없다
사람의 변화란 것은
난무하는 이미지들을 뚫고 마음을 파고들어 온
아주 작은 작은 것에서
비롯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오랫만에 본
바닷가의 햇볕은
너무도 좋았다.














2007/02/21 00:00 2007/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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