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지나가다

from 나날 2010/09/02 14:48


새벽에 바람 소리 때문에 깨어났다.

대기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잘려나가면서 생긴
푸릇푸릇한 냄새로 가득했고
길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서울을 관통하는 태풍은 정말 오랫만이다.

새벽에 태풍과 더불어 깼더니 기분이 묘하다.
눈을 뜨자 온 세상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무언가 새롭게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

지난 2003년 남해안을 강타한 태풍 '매미'가
아마도 가장 강력한 태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태풍은
'사라(Sarah)호' 태풍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곤했다.
'그때가 사라호 태풍이 왔을 때니까 59년이구먼'하는 식으로.
연도를 새기는 기준이 되기도 했던 걸로 보아
대단한 태풍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인터뷰 속에도
아버지와 처음 만난 때를 이야기 하시면서
'사라호 태풍 땐가 그 전인가'라고
말씀하시는게 나온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태풍은 가끔씩 깨닫게 해준다.

롯셀리니의 영화 '스트롬볼리'는
무식한 남편이 내내 못마땅했던 여자 주인공이
집을 떠나 산을 넘다가 화산의 폭발을 만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어쩌면 좀 황당한 결말 같기도 하지만
자연의 큰 힘 앞에서 인간의 고집이란
하찮은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겸손을
결코 다시 회복하지 못할 것만 같다.

*

스트롬볼리 이야기를 하다보니
롯셀리니의 영화들이 보고싶다.
그것도 필름으로 극장에서...
특히나 '스트롬볼리'는 꼭 보고싶다.
왜 그렇게 내가 롯셀리니 영화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
회고전이 열리면 좋을텐데.







2010/09/02 14:48 2010/09/0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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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 2010/09/02 23: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젠 정말 태풍때문에 겁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길가에는 나무가 쓰러져 있고 전기줄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
    정말 이런난리는 처음 겪어봅니다.

    • 마분지 2010/09/03 15:12  address  modify / delete

      정말 대단했습니다.
      새벽에 거실창을 열고
      바람 소리를 녹음했는데
      이러다 바깥 창이 깨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햇습니다.

      태풍이 서해를 통해서 와서
      그쪽은 더 심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간간이 쓰러진 나무들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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