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 blue dot

from 이야기 2010/12/15 15:37

Palebluedot

1977년 어린이 잡지에서
우주로 긴 여행을 떠난
보이저 1호의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33년이 지난 지금,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넘어
까마득하고 광대한 우주로
나아가려는 참이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pale blue dot'.
1990년 6월 명왕성 부근에서
64억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를 촬영한 것이다.
동그라미를 쳐두어야
겨우 보이는 작은 점.
1픽셀에도 못미치는 크기라고 한다.
얼마나 작은지.

어릴 적 우리 집에
TV가 생긴 것은 1979년이었다.
아는 분의 전당포에서 중고를 사왔다.
어느 가난한 사람이 맡겨놓고
결국 찾아가지 못했던
안테나가 부러진 흑백 TV.
그 TV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조금 본 기억이 있다.
아버지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셨다.
여행도 외식도 없는 날들을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가셨는데
마음 속에는 놀랍고 광대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암튼, 보이저 1호는
33년 동안이나 멈추지 않고
계속 태양계를 가로질러 나갔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를 겪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하고
졸업 후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직장을 그만두고
적잖은 신산함을 겪는 동안,
아이가 중학생으로 자라는 동안,
묵묵히 잠시도 쉬지 않고
태양계 바깥의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학교 때 보았던 잡지에는
보이저 1호의 그림이 있었고
외계의 생명체와 만날 경우
그들에게 지구를 알리는 물건의
그림도 함께 곁들여져 있었다.
그 속에 비틀즈의 노래가
실려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처크 베리의 노래
'Johnny B Goode'이 실려있었다.
기타 하나는 잘 치는
일자 무식의 촌 놈의 이야기이다.
왜 하필이면 이 노래였을까?
우주의 광활함과 까마득함을 생각하면
지구에서 보낸 조그만 탐사선은
그야말로 촌뜨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겸손한 생각이었을까?

보이저1호가 나아가는 동안
광주에서의 학살이 있었고
6월의 항쟁이 있었고
IMF를 겪었고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있었고
21세기가 되었고
자본의 약탈이 극심해졌고
돈 가진 천박한 무리들이
귀족 행세를 하는 시절이 되었다.
길고도 험한 시간이었다.

다시 저 창백한 푸른 점을 본다.
정말 작고도 작은 그곳에서
우리는 나날이 잔혹함을 확대재생산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지구라는 깡촌의
촌뜨기 하나가 기타를 메고
우주의 입구에 들어섰을 뿐인데.

칼 세이건은 저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주적인 연민(cosmic pity)으로
가득한 말이다.

여기 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이 총합,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지 못했다.
아이에게 생일 선물로 사주고
덕분에 나도 읽어야 겠다.













johnny b goode/ chuck berry

2010/12/15 15:37 2010/12/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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