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행렬

from 나날 2011/03/03 15:32

쌍용차 신차출시 축포 올릴 때, 노동자는 죽음의 터널 건너






벌써 열다섯 번째 노동자와 가족이 사망했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퇴직했던 사람들,
1년 뒤 현장 복귀라는 약속을 굳게 믿었던 사람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부여잡으려던 이들은
결국 죽음으로 내몰렸다.
쌍용차 무급휴직자이자 노조 조합원 고(故) 임모 씨 장례식장에서 만난 무급휴직자들과 정직자들은
임 씨의 황망한 죽음에 한 숨부터 내쉬었다.

“바닥이니까 올라갈 일만 남았어. 조금만 참자”...동료는 죽고

고인과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같이했던 K씨는 고인과 입사 동기였고, 현재 정직을 받은 징계자다.
26일 토요일 아침, 고인의 이모가 핸드폰 마지막 통화목록으로 있던 K씨에게 제일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고도 한 동안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안됐다고 했다.

“평상시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남들한테 아쉬운 얘기도 못 하던 사람이었어요. 작은 애가 고등학교 가는
내년까지는 꼭 현장에 복귀하고 싶다고 해서 ‘바닥이니깐 올라갈 일만 있다. 조금만 더 참자’고
서로를 격려했던 게 마지막 말이 됐네요.”


고인과의 마지막 술자리, 그 자리에 있었던 L씨도 고인과 같은 무급휴직자이다.

“같이 일용직 일을 다니면서 친해졌어요. 비슷한 처지다 보니까 어디 일이 생기면 연락도 하고,
종종 술자리도 갖고 서로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며 격려하곤 했었어요.”


K씨는 임 씨가 엄마의 죽음 뒤 심리치료를 받던 아들의 상태가 악화되어 그나마도 4개월 째
일을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와 병원을 데려다줘야 해서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 아들 옆을 지켜줘야겠다고 했어요.”


고 임 모 조합원과 입사 동기고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D씨는 고인이 ‘억울해서 그냥 이렇게
해고될 수만은 없다’면서 77일 파업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파업 뒤 무급휴직자로 선정됐지만,
2010년 4월 우울증을 알던 부인이 자살하고, 충격으로 아이들은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고,
생계조차 막막하기만 했다. 16년 동안 열심히 일만했던 고인에게 회사가 해준 일이란 정리해고 통보였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인은 인천 S악기사에 다니다가 쌍용차에 입사해서 월세부터 시작했어요. 10년이 지나
자기 집을 마련했을 때 정말 좋아하셨죠. 16년 동안 잔업 한 번 안 빠지고, 관리자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하고 열심히 일만 하던 형이었어요. 작년 형수 장례식장에서 형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조금 있으면 복직인데, 애들 잘 보살피며 살아야지’라고 했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복직인데... 회사는 합의를 지키기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만해서 이런 일이...”


D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경영은 정상화되어 간다하고 신차가 출시되어 축포도 터트리는데,
무급휴직자들의 복귀 계획은 없다는 회사의 발표는 날벼락과도 같았다.

‘쌍용차 출신 노동자’라는 사회적 낙인...눈치 보는 인생
일자리 향해 충남 천안, 당진으로... 바쁠 때만 채용되는 날품팔이 신세

쌍용차 무급휴직자와 정직자들은 여러 종류의 일을 하는데, 정규직으로 취업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는 정말 어렵다. 옥쇄파업을 한 쌍용차 노동자 출신이라는 낙인과 회사로부터 4대 보험이 나와
이중취업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시라도 다른 곳에 입사하면 현장 복귀 때 불이익을 당할까봐
눈치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회사는 다른 회사 다니다가 와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혹시라도 현장에 복귀 할 때 순위가 밀릴까봐
가뭄에 콩 나듯 안정적인 일자리가 나와도 선뜻 나서지도 못해요.”


그나마 징계자인 경우 70%의 임금을 받지만, 무급휴직자들은 10원 한 푼 받지 못하고 있다.
1년 6개월 동안의 생활고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없다. K씨와 L씨는 팀을 이뤄 일용직 일을 하는데, 평택엔 일자리가 별로 없어
보통 한 시간 여 거리가 되는 충남 천안이나 당진 등으로 일을 나간다. 한 달 수입은 고정 금액이
있지도 일정하지도 않다. 일이 꾸준하게 연결되면 최저 생계비는 되는데, 한 달에 50만원 벌 때도 있다.
그나마 겨울철에는 일거리도 없고, 대부분의 회사는 바쁠 때 일손이 모자랄 때만 비정규직으로 고용한다.
해고자나 무급휴직자나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은 별 차이가 없다. D씨는 겨울철에는 노가다마저
일자리가 뜸해 3개월 전부터 택시를 시작했다. 24시간 맞교대로 일하지만 사납금을 못 채우는
날도 많다고 했다.

“은행 대출 막히면, 친척들에게 돈 빌리고, 그것도 안 되면 자기 집 팔고 전세로 옮기고,
전세면 월세로 옮기고 하면서 버티는 거예요. 쌍용차 출신이라면 지역에서 일자리 구하기 힘들어요.
면접 보러 가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 물들인다’며 싫어해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는 “무급휴직자들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생계활동에 나서는 조합원들이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일용직이나
대리운전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다.”라고 전했다.

무급휴직자, 이미 받은 대출로 더 이상 은행에 손도 못 벌려
“이명박 정부, 쌍용차 약속 지켜라”

쌍용차 노동자들은 임 씨가 사망 뒤 보인 회사의 태도에 대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조문하면 회사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지니깐 조문조차 안 오는 것 같아요.
급여를 받던 안 받던 다 같은 쌍용차 직원인데. 신차도 나오고 경영상태도 좋아진다는데
아무런 답도 없고. 솔직히 회사에 많이 서운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제자리걸음만 걸은 것 같기도 해요.
무급휴직자들의 목에 목줄을 걸고 매달아 놓은 것 같아요. 회사는 언제 숨이 넘어가나 지켜보고만 있고요.”


K씨, L씨, D씨 모두 처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1년의 삶을 이야기할 때,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물기도 했다.

“사람인 이상 악감정도 있어요. 쌍용차를 버릴 것이 아니면, 내 식구처럼 보듬어 안고 치유해야죠.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쓰던 병원을 가든지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시간이 약이 아니에요.
코란도도 나오고 경영 상태도 좋아진다니 이제는 무급자, 해고자들을 안고 가도 되지 않겠는가 싶어요.”
“무급휴직자가 제일 힘든 것은 생계에요. 회사는 직원 취급도 안 해주고. 무급휴직자의 8-90% 가량이
이미 받은 대출로 더 이상 은행에도 손을 못 벌리는 처지에요. 회사는 생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제발 회사가 더 이상 편을 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발 희망이라도 갖고 살게요.”
“정말 회사와 이명박 정부가 약속을 지켰으면 합니다.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가 가정이 파탄 나고,
생계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지옥 같은 2년도 부족하단 말입니까. 더 이상 이런 죽음이 없어야 해요.”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 발표부터 지금까지 2년의 터널을 지나왔지만, 여전히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쌍용차 노동자들. 왜 이들이 또 누군가의 부고가 들리지 않을까, 새벽에 울리는
전화기 소리에 가슴 졸이며 살아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 3월 15일 법정관리가 끝나는
쌍용차 회사측은 지금이라도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출처: 참세상
참고 글: 사회적 타살





2011/03/03 15:32 2011/03/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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