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from 나날 2011/05/02 12:07


사무실 창가에
전에 만들었던 마분지 배를 놓았다.
'고라파랑 딸기랑'에서
수평선을 넘어가던 그 배다.
마분지 화물선이
강남의 빌딩 숲 사이를
떠간다.

왜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
단 한 번도 바다를 넘어가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어릴적 나의 미래는
북쪽의 땅을 향해 있었다.

이땅의 사람에게 있어 바다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열린
어떤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섬들에 의해 막혀있어
세계를 유린했던 지리상의 발견도
이땅에 제대로 미치지 못했다.
또한 바닷길을 열어간 역사도
그리 선명치 않다.
그래서 오히려 강제적인 개항을 당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바다가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거나
서울에서 답답함을 느끼면
언제나 바다를 그리게 된다.
수평선을 넘어가는 아득한 세상은
바다를 떠나서야
의미있는 무엇인 것이었다.

배의 엔진음과 뱃고동을
늘 듣고 자랐다.
항구를 오가고 수평선을 넘어가던
배를 거의 매일 보았다.
그리고 선원의 아들이던
친구들이 가져온 박래품(舶來品)들과
역시 선원이었던 사촌형이 가져온
애플2 컴퓨터, 향기나는 잉크 같은
신기한 물건들도
바다 건너에 대한 매혹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열려있는 그 바다만큼은
늘 마음 속에 일렁이고 있었다.

어릴적 읽었던
메이스 필드라는 시인의
'바다에의 열정'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나는 아무래도 바다로 가야겠다.'
만약 내게도 은퇴란 것이 있다면
고향 바다로 내려가고 싶다.

*

고향 바다가 등장하는 세 편의 일기

다시 열아홉 살이 되면
바다가 좋은 이유는
바다는 돌아가라고 말했다





*

5월이 되었다.
이번 달에는 급한 일을 마치고
부산에 한 번 내려가야겠다.



2011/05/02 12:07 2011/05/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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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 2011/05/08 19: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제는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학교에 졸업생들 회의차 갔다왔는데.. 무지 더웠습니다.
    문득 저위에 그림을 보고 있으니 어제 본 영도앞 무지막지 큰 배가 생각나네요.
    부산에 살면서도 그렇게 큰 배는 본적이 없었는데.. 어제 간만에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을 보니
    제나이에도 신기한건 신기한가 봅니다. 마분지님 저위에 배그림 좀 써도 될까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프린터 좀 해서 붙여볼까 해서요 ..

    • 마분지 2011/05/09 14:45  address  modify / delete

      부산에 다녀오셨군요.
      영도 바닷가, 바로 코 앞에서
      눈높이로 지나가는 화물선은
      정말 대단한 압박감이죠~^^

      배 그림 쓰셔도 됩니다.
      근데 사진 사이즈가 작아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어떤 일인 궁금하군요.

  2. mani 2011/05/09 20: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괜찮습니다.. 딱 저사이즈도 좋을것 같습니다.. `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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