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from 이야기 2011/07/24 01:13


바나나를 잘 먹지 않는데
며칠 전에 '돌(Dole)' 바나나를 샀고
아주 오랫만에 바나나를 먹었다.
필리핀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

재앙에 가까운 일을 진행하면서
틈틈히 책을 읽는다.
'바나나'라는 책이다.

1950년대,
과테말라에서 바나나를 재배하여
미국 시장에 팔았던 UFC라는 회사와 맞섰던
두 대통령이 어떤 절망적인 상황을 겪었는지
상세히 말해주고 있다.

과테말라 '10년의 봄'의 두 번째 주역이었던
아르벤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경작하지 않는 UFC의 토지를 몰수하려 했다.
그러나 UFC는 기자를 고용하여
아르벤스 대통령과 소련과의 관계에 관한
조작된 기사를 기사를 써서
당시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미국 내의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고,
'크레믈린은 왜 바나나를 싫어하는가?'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
마치 UFC가 소련과 자유진영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있는다는 식의 이미지를 만드는 등
미국 정부를 움직이는
다각적인 행동을 취했다.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CIA에게 아르벤스의 축출을 지시했다.
이어서 미국의 주도 아래 반군이 조직되었고
정부군 조차 미국의 집요한 선전에
마음이 돌아섰다.
아르벤스 대통령은 결국 추방되었고
세계를 전전하다가
멕시코에서 암살되었다.

이 UFC의 브랜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치키타(Chiquita)'이다.

한편, 바카로라는 미국인이 만든
'바카로 브라더스 앤 컴퍼니'라는 회사는
온두라스에서 바나나를 재배하면서
현지인들로부터 현금과 땅을 받았고
그대신 지분을 주기로 했다.
1903년 엄청난 흑자를 기록했고
투자자들이 자신의 몫을 요구하자
바카로는 토지대장과 계약서가 보관되어 있던
시청 건물을 불태워 버렸고
모든 것을 자기가 차지했다.

이 회사는 나중에
'스탠더드 앤 스팀쉽 컴퍼니'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들의 브랜드는 내가 며칠 전에 먹었던
'돌(Dole)'이다.

*

돈을 위해 정부와 군대가 움직이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
패권국가 미국의 현대사는
그러한 일들로 점철되어 있다.
한국이 하는 짓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정부.

한진중공업은
김진숙씨가 200일 째 농성하고 있는
영도조선소의 85호 크레인을 바다쪽으로 옮겨서
진압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고,
또 검찰은
희망버스를 조직한
송경동 시인을 체포하기 위해
한 번 기각된 바 있는
체포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3차 희망버스의 방문 때,
'어버이연합' 등의 어용단체들이
영도다리를 막을 예정이라고 한다.
영도구청은 주민들의 세금으로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플랭카드를 붙이도록
문안까지 만들어 지시했다.

*

길고 긴 여름이고,
길고 긴 싸움이다.

주류 미디어에서 철저히 외면하고 있지만
85호 크레인의 싸움은
트위터를 통하여
자발적인 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노동계와 시민들이 다시 함께하게 된
역사적인 지점이다.

반면, 유성기업 노동자의 싸움은
일반인들과의 공감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

내 발 밑의 땅이 모래가 되어
서서히 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오늘도 주류 미디어는
통조림 같은 레디 메이드 감동을
선사하느라 바쁘다.








*

200 일째
85호 크레인 위에서 싸우고 있는
김진숙씨의 트위터
@JINSUK_85



2011/07/24 01:13 2011/07/24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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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 2011/07/27 02:3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정말 바나나는 비싸서 못먹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쉽게 구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네요..
    저도 얼마전에서야 김진숙님 기사를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잘되었으면 좋겠는데.
    기업에게는 배려는 없는거 같습니다.. 어제 비가 여기도 엄청 왔습니다. 서울도 괜찮으신지.
    장마 조심하시고 또 들르겠습니다.

    • 마분지 2011/07/27 16:14  address  modify / delete

      잘 지내셨는지요?

      어릴 때 바나나는
      소풍갈 때도 못먹는비싼 과일이었죠.
      다행히 바나나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3차 희망버스는
      3만명이 간다고 합니다.
      경찰과 회사측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 걱정되네요.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김진숙씨가
      무사히 땅으로
      내려올 수 있기를...

      기업들의 횡포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생각 어디에도
      인간이 없다고 느껴지네요.
      아마 인간이 아닌듯...

      장마가 끝났다더니
      정부의 희망사항이었나 봅니다.
      서울, 특히 제가 있는 곳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동부간선도로는
      또 잠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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