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

from 나날 2011/08/01 13:43


백만 년 만의 촬영장.

여러 개의 HMI가 켜져있고,
ARRI 35가 돌아가고,
알만한 얼굴의 모델이 가운데 있고,
한 테이크가 끝나면 달려와
모델의 메이크업을 고치는 손길이 있고
달리 위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캠코더를 하나 사서 손에 쥔 이후,
이렇게 이미지를 만드는 곳을
떠나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밥 벌어먹기 좀 더 쉬웠을
CF쪽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면서
험한 일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나의 캠코더를 통해
작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ARRI 35의 세상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두 대의 ARRI가 돌아가던
촬영장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다시, 처음 캠코더를 사서
가슴에 품고 잠들던 때를 떠올린다.
늙어버린 어머니의 얼굴을 담고,
어린 시절의 골목을 담고,
보도블럭 사이의 이파리들을 담고,
밤의 불빛을 담던.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들,
먹고살기 어려운 날들.
하지만 내 속의 달팽이는
오늘도 꾸물꾸물
어디론가 가고 있다.










2011/08/01 13:43 2011/08/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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