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들 1 - 서민

from 이야기 2011/08/14 02:31
지난 수년 간
귀에 가장 거슬리는 단어는
'서민'이다.

서민(庶民)이란 단어는
언제 생겼을까?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는
정부의 공식적인 언사에서
이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정권 들어서
대통령부터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떠들었다.

물론, 그 말과는 정반대의 정책들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서민'이란 '아무런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가지 못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치권의 공식적인 언어에서 사라져가던
서민이란 단어의 재등장은
이번 정권의 의식 속에 깊숙히 각인된
특권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庶'라는 단어에는
'무리'라는 의미도 있지만
'비천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적서차별(嫡庶差別)이란 단어를
생각해보자.
홍길동에게 호부호형도 못하게 하던,
첩과 그 자식을 차별하던
그 적서차별 말이다.
재래 시장에서 어묵 먹는 쑈를
텔레비전 따위로 내보내며
서민을 위한 정치를 떠벌이는 이들은
자신들은 서민이 아닌 
정통성을 지닌 정실의 자식,
적민(嫡民)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 무서운 일은
옛 권위주의 시절에 쓰였던
서민이란 단어를 일상적으로 퍼뜨리며
그들과 일반 국민은 다른 존재이며
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계층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각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일제 시대의
일등국민, 이등국민의 구분처럼
마음 속의 신분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그 전쟁의 명칭을
'이라크 전쟁'라 하지 않고
'테러와의 전쟁'이라 불렀다.
단어를 바꿈으로써
명분 없는 전쟁에 거짓 명분을 만들며
일반대중을 현혹했다.

미디어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전달되는 어떤 말들은
결국 주술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정권의 입을 통해
서민이라는 단어를 들어온
몇 년 사이에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어 낸
자부심에 빛나는 '국민'으로부터
나으리의 자비에 기대어 살아야하는
가련한 '서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2011/08/14 02:31 2011/08/1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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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ㅁㅁㅁ 2017/04/14 18: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 ! 저도 요즘 가장 거슬리는 단어가 '서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민이란 단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들어왔는데
    저랑 똑같이 생각하시는 분이 계셨네요.

    요즘 많은 정치인들이 '서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서민을 위한 법을 만들겠다. 라는 발언을 많이 하시는데요,

    근데 그 '서민'이란 단어가...
    마치 자신들은 분리된 상태에서 '그래, 너네가 그렇게 징징대니 내 선심 한 번 써줄게.' 라는
    뉘앙스로 들린다는 거예요~

    차라리 '서민'이란 단어보단 '국민'이란 단어로 바꿨으면 괜찮았을 텐데
    마치 자신들은 서민들 위에 있다. 우리들은 너네와 분리돼 있어. 라는 당연한 전제를 깔고 발언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회의원, 대통령 즉, 정치인들은...
    '국민이란 주인'이 당신네들에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주겠소. 그러니
    우리가 편히 살도록 노력해 주시오. 라는 뜻으로 세워진 국민들의 머슴, 일꾼들인데

    마치 그것이 특권인 마냥 머슴들이 주인을 갖고 논 꼴이 됐다라는 거죠.
    그러면서 주인을 서민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들을 분리시키고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는 게
    정말 가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문에 말씀하신 '은연 중에 각인시키고 있다.' 라는 부분은 생각도 못했는데
    와서 깨닫게 되네요. 와 욕이 나옵니다 X발..

    • 마분지 2017/04/16 14:04  address  modify / delete

      ㅁㅁㅁㅁ님!
      댓글 감사합니다.
      가랑비에 옷젖는 격인지
      이제는 서민이란 단어가
      자연스런 일상어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한국을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는
      심각환 갈등의 단어인데...
      오래 전의 글,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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