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들을 뒤지다가 옛 카세트 테입을 발견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CD를 옮긴 것.

오래 전에 자동차가 있었다.
90년 대 중반에 중고차를 샀었는데
카세트 테입으로 음악을 듣고 다녔다.
볼륨을 키워서 쿵쿵거리며 달렸다.
비틀즈의 속칭 레드 앨범, 블루 앨범도 많이 들었다.

비틀즈를 듣던 어느 한 순간이 생각난다.
청담동에서 영동 대교로 진입하기 위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있었을 때
'Lucy in the sky with diamond'가 들렸고
이거 참 좋구나,싶었다.
그 비틀즈의 테입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폐차 될 때 함께 사라진 것인지...

그런데
자동차를 운전하며 들었던 음악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경우는
카세트 테입이 아니라
라디오를 통해서
우연찮게 들었던 몇 곡이다.

일에 시달리던 어느 날 새벽,
어두 컴컴한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강북강변도로로 접어 들었고
도로엔 거의 차가 없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나와서 머리가 흐릿한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마태수난곡'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흘러나왔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스스로 정당성을 찾을 수 없는 일에
잠 못자면고 시달리며 사는
이런 내 삶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잠겨 있을
마음의 바닥을 여지 없이
흔들어 버린 것이었다.

또 하루는 일찍 퇴근하면서
창문을 열고 볼륨을 한껏 올리고 달렸다.
강북강변에서 동부간선도로로 접어 들어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길이 있는데
그러면 오른 쪽의 나무들이 죽 보인다.
그 지점에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들었다.
라이브였다.
말할 수 없이 좋은 노래였다.
아마도 초 여름이었을 것이다.
나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1999년 일 것이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크라잉넛이 나와서
특유의 어눌한 척,꺼벙한 척 하는말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달리자'를 불렀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고 눈물이 솟았다.
나는 차를 달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뭘 하려고 이 길을 달리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나를 흔들었다.

그 시절 차를 달리며 듣던 음악이
나를 많이 두드려 깨웠다.

지금은 자동차가 없다.
아이는 불만인 것 같지만
자동차가 없는 생활에 익숙하다.
하지만 가끔은 운전하며 음악을 듣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한 여름 창문을 열어놓고
볼륨을 한껏 키워 듣는
락(rock)은 정말 좋다.

*

늦은 출근 길 버스에서
롤링 스톤즈의 'Moonlight Mile'을
세 번 반복해서 들었다.
아주 좋다.








2011/09/07 16:10 2011/09/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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