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from 나날 2011/09/14 01:20


올해 내 나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와
같아졌다.

아주 오래 전에
알베르 카뮈의 미완성 소설인
'최초의 인간'을 읽었다.
나이든 작가가
자기 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던
아버지의 묘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오래 전에 무덤에 묻힌 이 사내가
자신 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울컥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버지 묘를 찾은 나는
덤덤했다.

*

밤 늦게,
오사카의 츠르하시(鶴橋) 시장에서
일을 하는 교포들의 삶을 담은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고향인 제주로 찾아가
성묘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모진 고생을 하셨겠지만
지금이라도
고향을 찾을 수 있구나
싶었다.

아버지와 형들은
고향 소식 하나 못듣고 돌아가셨고,
여전히 스스로를
이북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큰 고모님은
긴 긴 타향 생활 끝에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몇 달 전
'가지 않은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실향민의 자식이지만
임진강에 가보지도 않았고
가기도 싫다.
만들고 있는 다큐에도
임진강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 보다 어린 나이의 아버지가 건너 온,
그리고 다시 건너가지 못한
그 강을 본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요단강 보다 건너기 힘든
임진강.

*

살기 힘든 큰 동생과
할 이야기도 많았고,
또 요양원에 가신
큰 고모님도 찾아 뵈었어야 했는데,
추석이면 해야한다는
의례적인 일들 때문에,
또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이 뭐란 말인가?
천리 길을 달려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지금 중요한 이야기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면.

피곤하다.






2011/09/14 01:20 2011/09/1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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