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것이다

from 이야기 2011/09/25 03:58
 
                                                                            Finger gun- 2008(?)

누군가가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이야기 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러니 나도 그런 말을 삼간다.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이유나 과정을 묻지 않는 편이다.
그랬겠지,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어처구니 없는
인간에 대해서는 욕을 한다.
물론 나의 기준일지 모른다.

아무튼 위의 그림은
누군가가 나의 말을 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괴로워서 그린 그림이다.

나의 뒷통수에서 오가는
나에 관한 말을
어찌어찌 전해들었을 때의 느낌.
아마도 3, 4년 전에 그린 그림일 것이다.

원래 나는 조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지난 10년 간은
말을 좀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게 되면
어김 없이 괴로웠다.

무언가를, 특히나 어떤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말하는 것은
더욱 나쁜 일이라는 것을 배우며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별 이야기 아닌 것에도
괴로워했을 것이다.
어쩌면 별 이야기 아니라고 했던
나의 말이
남을 괴롭게도 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난 그림을 보면서
괴로웠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여전히 아픈 말들은 남아 있지만,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은
생채기에 익숙해지는 일.

스무 살 때 '문학개론' 수업 시간에
들었던 말이 있다.
선생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아니?'
스무 살 언저리의 아이들이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미 답을 가지고 있던 선생은
그윽하게 옆을 보다 말하는 것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irony)를 견디는
힘이 생긴다는 거야.'
아이러니란 말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들었기에
그 단어는 오래오래 남았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그뜻을 조금씩 깨우쳐 갔다.
스무 살 어느 한 시간의 수업 중에
들었던 짧은 이야기가
대학이란 걸 다니며 배웠던 것 중에
가장 훌륭했던 배움이었다.
대학에서의 많은 수업은 잊혀졌지만,
몇몇의 시간은 남아있고
그 중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얼마 전에 아는 디자이너가
위의 그림을 보며 말했다.
'머그 컵에 이 그림을 그리면 좋겠네요.'

위의 그림을 머그 컵에 그리면
저 총알은 컵을 타고 돌아서
나의 등을, 혹은 뒤 통수를
쏘게 된다.

*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싫어하지만,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에서
각인 되어있는 한 장면이 있다.
'태양의 제국'이었고,
그 영화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행기에 열광하는 미국 아이가
중국에서 태평양 전쟁을 겪고
일본군을 몰아 낸 미군들이 몰려왔을 때,
총을 든 미군을 보며 반사적으로
'I surrender'라고 하던 장면이었다.

힘이 있는 이들은
전쟁을 하고 싸우지만
어린 아이는
적군도 아군도 없이
항복을 한다.
평화를 원한다.

*

이 세상은 참 슬픈 곳이다.
무력한 자만이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었을 것이다.









 


2011/09/25 03:58 2011/09/25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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