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from 나날 2011/11/21 01:40


2002년 9월 쯤에 장만한 펜티엄 4 컴퓨터.
2007년 초, 편집용 컴퓨터를 장만한 후에는
집으로 가져와서 썼다.

새로운 컴을 마련해서 이별하려니,
이놈과 함께 떠돌던 시절이 생각난다.
마지막 직장에서부터
망해가던 친구의 오피스텔,
강아지가 주인이던 이상한 CM 프로덕션,
아무 일도 못하고 문닫은 PD 프로덕션,
그리고 내가 만든 사무실에서까지
팍팍하고 정처 없던 시절을
나와 같이 떠돌았다.

256 메가 램의 환상적인 속도.
그리고 요즘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참으로 오래된 컴퓨터이다.
하지만 이걸로 참 많은 일을 했다.
초반의 90개 정도의 그림일기를 편집했는데
그림일기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건
거의 이놈으로 편집을 했다.
그리고 홈페이지도 이걸로 만들었고,
그림도 많이 그렸다.
물론 밥벌이도 했고.

고생이 많았던 녀석이다.
선을 다 뽑고 바닥에 내려놓고 보니
울컥, 하는 기분이 든다.


*

이놈으로 처음 편집한 일기와
마지막으로 편집한 일기를 올려보자.

- 2002년 9월 18일, 혼자 심야영화를 보다

 

- 2007년 1월 6일, 새 해 첫눈

 

*

그러고 보니,
홈페이지를 만든지도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지금의 블로그는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생소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블로그를 시작하겠다면서
어쩔 수 없이 텍스트큐브를 선택했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스킨이
이것이었는데
아직 내 집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시
검은 색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보안이 안되는 게시판을 더 이상 쓸 수도 없으니
서버도 옮기고,
블로그 툴도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홈페이지 형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

바람이 매섭다.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어
영상을 올리고,
음악을 올리고,
그림을 올리고,
또 얼굴 모르는 이들과 이야기 나누던
그 겨울의 싸아하고 외롭던 시간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불을 끄고
라디오를 듣던 때의 정감을 되살려 주었던,
찾아주고 반응 해주는 이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저편에도
나처럼 외로운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던.

아무 것도 없었지만
모든 걸 가진 것 같았고,
외로웠지만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그 때.



2011/11/21 01:40 2011/11/2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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