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from 나날 2011/12/11 00:13

                                                                 - 서울 중림동 1976. 5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전집'을 샀다.

손창섭의 단편집을 읽었는데
표지에 쓰인 사진이 김기찬의 사진이었고
궁금해서 결국은 사진집을 사고 말았다.
30년간 서울의 중림동, 행촌동 등의 골목에서
찍어온 사진들이었다.

골목길은 어디로 가는 길이 아니라
삶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었다.
아이들은 거기서 어울려 놀고,
동생을 돌보면서 커간다.
여자들은 함께 어울려 일을 하기도 하고
노인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김기찬의 골목은
손창섭 소설에서 보여지는
전쟁 후의 황폐한 내면에 상응하는
더러운 골목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김기찬의
가난하지만 정감어린 골목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자본의 편의를 위해 조성된,
체제가 삶과 문화를 조정하기 쉬운
아파트라는 기괴한 주거 형태가
그 골목들을 밀어낸 것이다.

작가는 후기에 쓰기를
골목이 평생의 테마라고 생각했는데
자신 보다 먼저 골목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물론 변두리 어디 쯤에
골목은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더 이상 거기서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있거나
집에서 게임과 TV로 시간을 보낸다.
여자들도 그 골목에 있지 않다.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해야한다.

골목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2007년,
내가 자란 골목길을 찾았을 때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텅빈 골목엔 대출 전단이 나부꼈고
우체부 만이 지나고 있었다.

*

작가는 30년 동안
서울의 몇몇의 골목을 돌아다니며
그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집에는 수년 혹은 수 십년의 터울을 두고
같은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삶을 바친 기록이다.

골목이 사라지고 2005년,
그 역시 세상을 떠났다.




2011/12/11 00:13 2011/12/1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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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ni 2011/12/19 23: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동안 잘지내셨어요?
    회사에서 조그만한 직책을맡게되니 몸이 너무 그동안 바빠졌었습니다. 성과 및 개선 관련 발표 준비때문에
    몇달이 그냥 정신없이 지나간것 같습니다. 벌써 올 한해도 다 지나갔네요 ^^
    올한해도 저의 영상의 항상 멘토가 되어주신 ILA 님께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늦더라도 마무리가 되는 다큐의 관객이 되고 싶습니다.
    자주들르지는 못하지만 생각하게 하는글 언제나 잘 읽고 갑니다.

    • 마분지 2011/12/21 12:09  address  modify / delete

      연말이라 더욱 바쁘셨을 것 같네요.
      직장 다닐 때가 떠오릅니다.
      연말이 되면 하게 되는 한 해의 성과 분석,
      그리고 새 해의 계획...
      그렇게 보내다 보면 어느 새 망년회...ㅠㅠ

      바쁜 날들이지만 건강하시고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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