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

from 나날 2012/01/26 14:40


버스를 내려 사무실로 가는 길.
봉은사에 사철나무 울타리가 있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

사계절 모두 푸르다고 해서 사철나무.
소나무의 푸르름이야
수많은 선비와 시인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사철나무의 푸르름은 그렇지 못했다.
작은 키, 그리고 올망졸망한 이파리,
고고한 정신이라곤 빗댈 수 없는 모양.
하지만 묵묵히 겨울을 견딘다.
자그만 울타리를 만들고
문 옆이나 어느 모퉁이에서
낮은 키로 언제나 푸르름을 보여준다.

*

사철나무에 대해 글을 쓰다보니
'대철'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사철나무라는 이름을 처음 배웠던 어린 시절,
그 아이의 집 앞에 놀러갔고
사철나무 곁에서 딱지놀이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게 사철나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철'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쓸 때
'ㄷ'과 'ㅐ'를 붙여쓰는 바람에
'머철'이라고 쓰곤했던,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리고 그 보다 더 어릴 적
사철나무라는 이름도 모를 때
내 동생을 업고 그 쯤을 지나가던
사촌 누나 생각도 난다.
박수근의 그림처럼 굽은 등.

*

오래 전, 막 잠이 들 무렵,
어린 시절 옆 동네의 소나무가
어슴프레 떠오르곤 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거기엔 무슨 기억할만한 일도 없고
그저 지나치던 나무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계속 떠오른 것이었을까?
이런 기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도 잠으로 빠져들 무렵,
깨어있을 때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이미지 들이 떠오르곤 한다.
특별히 기억할만한 것도 아닌 장소나 사물들.
그런 기억들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

계속 이어져온 과로와
명절을 제대로 쉬지 못한 피로.
하루 쯤 아무 생각없이
자고 싶다.





2012/01/26 14:40 2012/01/26 14:40

Trackback Address >> http://lowangle.net/blog/trackback/603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