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찍은 사진

from 사진, 이미지 2012/02/12 03:00


내가 태어나서 처음 찍은 사진.

나의 국민학교 졸업식 때
큰 고모의 카메라를 빌려 기념 사진을 찍었고
나도 한 장 찍어보았다.

소위 '국민 교육'을
그리 충실히 받지 않은 어린이였음에도
국기 게양대를 가운데 놓고 찍었다.
시각의 지향성이란 것도
교육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

학교 건물의 3층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씌어있고,
2층엔 '총력안보'라는 표어가 있고,
현관 위엔 '나라엔 충성, 부모엔 효도'라는 문구가 있다.
그리고 태극기 옆으로 나부끼는 새마을기.
사진의 위쪽 새로 짓는 집들 사이에
확성기가 비죽 솟아 있다.
어김없이 거기에선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왔을 것이다.

교문에 들어서면,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어야 했다.
월요일 마다 전교생 조회를 마치면
군인들처럼 행진곡에 맞춰
팔을 절도있게 흔들며 학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매월 1일과 15일,
새벽에 모여서 하던 조기 청소.

어릴적 이렇게 몸에 배었던 습관들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힘으로
작용하고 있을까?

사진 위쪽의 하늘엔
자주 솔개가 원을 그리며 천천히 날고 있어서
조회 시간이나 체육 시간이 지겨우면
그 비행을 보곤 했다.
 
*

이 사진을 찍은 카메라는
일제 후지카(Fujika)였을 것이다.
Fujika인지 Fujica인지 헷갈리지만
아마도 Fujika였을 것이다.
초점을 맞추는 게 특이했다.
렌즈 테두리에 있는 링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뒷면, 뷰 파인더 왼쪽에 있는
다이얼을 돌려서 맞췄다.
이 때 필름은 후지칼라 100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카메라를 싸고 있던 갈색의 가죽과
렌즈 통 옆의 여러 링 위에 있던 색색의 숫자들,
그리고 뷰 파인더를 들여다 봤을 때의
적막하면서도 묘한 기분.
누르면 들리던 찰칵하던
짧고 경쾌한 소리.

아마 기본적인 조작법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것 같다.
해가 나오면 이걸 125로 하고 이건 f11로 하고...
그 후로 카메라를 쓸 일이
거의 없어 잊었지만.

요즘은 카메라들은
대체로 LCD를 보고 촬영을 한다.
그러니 검은 테두리 속의 사각 그림으로
새롭게 세상을 보는
그 묘한 느낌을 경험할 기회가
점점 줄어만 간다.

*

사람들 북적이는
그 옛날의 밋밋한 국민학교에
딱히 찍을 것도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처음 찍은 사진의
중앙을 차지한 것이
국기 게양대였다는 것을 확인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렌즈를 열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엔
자신을 지배하는 어떤 힘이 작용을 한다는 것.
그리고 체제가 강요하는 시각적 배치에서
누구든 그리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어디에서 만나게 되는 이미지들.
전철이건 열차건 길거리이건
심지어는 엘리베이터까지
시선이 우선적으로 닿는 곳을
선점하고 있는 이미지들.
어린 시절의 그것은 국가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자본의 것이다.
둘 다, 자유롭게 하는 이미지가 아닌
지배하려드는 이미지들이다.
 








 

2012/02/12 03:00 2012/0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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