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을 읽고

from 나날 2012/05/10 10:00


이호철의 '소시민'을 읽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 피난지이고 후방이었던
부산이 배경인 소설이다.

당시 피난 와 있었을 아버지가
부딪히고 살았을 현실과 거기서 느꼈을 감정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기 위한 독서였다.
당시 아버지는 열 일곱, 열 여덟이었고,
전쟁이 길어진다면 징집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의 주 무대는
완월동의 국수 만드는 집.
거기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좌익 혁명을 꿈꾸었으나 끝 없이 쇠락해가는 사내와
이승만의 우익 청년단 쯤에 속해
새로운 기득권을 갖고자하는 이들과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뒤틀어진 삶을 선택하는 여자들이
모여들었다가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당시의 사회와 내면을 보여준다.
송도, 영도, 자갈치, 대청동,
충무동 로터리, 자유시장 등
잘 알고 있는 곳들도 많이 등장해서
그곳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고,
힘에 편승하는 것이 처세의 철칙이라 믿는
천박한 논리의 적나라함과
고립되어 피폐해진 지식인의 이미지도
다시 더듬어 보게 된다.

하지만, 간간히 전해지는
전쟁 나간 이들의 죽음을 뺀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우익의 데모와 국회의 파행, 부정과 비리,
돈 만이 힘이라는 논리.
자신 나름 올곧은 생각을 가졌던 이들이
하염없이 쇠잔해가는 현실.
물론 지금 시대의 표정은
그때만큼 거칠지 않을 것이고,
진보적인 실천들도 당시보다
조금 더 자리를 잡아가고 있겠지만
외양을 걷고 본다면
뭐가 크게 다르겠는가?

아무튼 재미있게 읽었다.

*

작가 이호철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인민군으로
6.25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풀려난 후
혼자서 월남했다.

작가의 연보(年譜)를 읽다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의 캠페인 슬로건이자 키워드였던
'보통 사람'이라는 말을
그가 먼저 썼다는 점이다.
아마도 신문 칼럼에 썼던 것 같다.
5.18을 일으킨 군부정권에 맞선 작가의 표현이
오히려 군부정권의 것이 되고 만 아이러니.
광고 카피란 대체로 그런 것이다.
스스로 새롭게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편취하거나 가져오는 것.
혹은 맥락을 바꾸는 것.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
그런 건 오지 않았고
더 나빠졌다.


*

'소시민'을 읽고나서
오래 전에 쓰다만 장편 소설을
마무리해야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지금의 다큐가 끝나면
틈틈히 고치고 이어 써야할 것 같다.

글과 별로 관련이 없는 위의 사진은
지난 해 11월 부산에 가서 찍은 것이다.
부산 중구의 40계단 바로 위,
인쇄 골목 길의 위편에 있는 집.
일본식인지 중국식인지 모르겠지만
넓은 창으로 햇볕이 잘 들어올 것이고
부산 항이 내려다 보일 것이다.

저런 곳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글을 마무리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마도 실현되지 않을 희망.














2012/05/10 10:00 2012/05/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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